CULTURE

미국에서 K-팝을 만드는 사람들, 하이브 아메리카 #1

2025.12.08 | by Billboard Korea

K-팝의 새 시대를 개척하는 하이브 아메리카(HYBE AMERICA)를 이끄는 4인이 전하는 진짜 '현지화'에 대한 이야기


"단 하나의 성공적인 그룹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문화적 변화를 이루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여러 팀이 성장하는 것이 거의 필수적이다(To achieve the ultimate goal of cultural change, it’s almost a necessity to make sure you have many of them progressing.)". 2024년 뉴요커 칼럼 ‘케이팝의 왕(The K-POP King)’에서 하이브 방시혁 의장이 전한 이야기다. 방탄소년단의 성공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거듭난 하이브는 K-팝을 특정 국가의 장르로 한정하는 것을 넘어, 그 성공의 핵심에 있는 제작 시스템과 철학을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인 미국에 이식, 더 나아가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글로벌 팝 전도사’ 역할에 힘써왔다. 2019년 4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에 설립한 하이브 아메리카는 이 담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중심에 있다. 

하이브 아메리카는 오랜 현지화 작업 끝에 K-팝을 미국 시장에 정착 시키며 독창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다. 첫 번째 증명은 하이브와 게펜 레코드(Geffen Records)가 합작한 글로벌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다. 오디션 프로그램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The Debut: Dream Academy, 이하 드림 아카데미)’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스타 아카데미(Pop Star Academy:KATSEYE)’를 통해 선발한 마농, 소피아, 다니엘라, 라라, 메간, 윤채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멤버들로 빠르게 팝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2023년 11월 18일 데뷔 이후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던 그룹은 모두의 예상보다 빠르게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25년 6월 발매된 두 번째 EP 'Beautiful Chaos'는 빌보드 200 차트 4위에 올랐고, 수록곡 "Gabriela"는 11월 22일 기준 핫 100 차트 31위로 나날이 상승세다.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뉴 아티스트, 베스트 팝 듀오 / 그룹 퍼포먼스 부문 노미네이트는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하이브는 현지의 인프라와 인재들을 통해 ‘생산’되는 글로벌 문화 현상을 만들고 있다. 2023년 설립한 하이브 라틴 아메리카는 올해 최초의 보이그룹 산토스 브라보스(SANTOS BRAVOS)를 내놓았다. 캣츠아이의 데뷔 싱글 Debut’를 프로듀싱한 라이언 테터(Ryan Tedder)와의 새로운 미국 시장 보이그룹 프로젝트도 예고되어 있다. 현지화 그룹 및 사업 다각화로 인한 꾸준한 적자 및 영업 손실을 감수하고서도 꾸준히 북미 사업에 투자해온 결실이 돌아오는 분위기다. 이런 K-팝 현지화의 최전선에는 방시혁의 비전을 현실로 구현하는 네 명의 개척자가 있다. 캣츠아이 프로젝트의 크리에이티브를 총괄하는 인정현 수석 크레이티브 프로듀서(Head of Creative Production), K-팝 퍼포먼스의 새 역사를 썼고 이제는 T&D(Training & Development) 시스템의 현지화를 이끄는 손성득 총괄 크리에이터(Executive creator),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상품과 공간으로 확장하며 팬 경험의 최전선을 책임지는 이혜원 VP, Merchandising and Strategic Planning, 그리고 빅히트 뮤직 실장으로 방탄소년단 매지니먼트 등을 담당했고, 이제는 라이언 테더와의 새로운 보이그룹 프로젝트를 이끄는 이혜진 GM(General Manager)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인정현, 손성득, 이혜원, 이혜진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하이브 아메리카 사옥에서 K팝의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네 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방시혁의 거대한 꿈이 어떻게 미국의 심장부에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 있는지 그 생생한 과정과 철학을 들여다보았다.

베일을 벗은 ‘팝스타 아카데미’

하이브 아메리카의 도전은 처음부터 거대한 실험이었다. “제가 넘어왔을 때는 ‘미국 시장을 타겟으로 한 글로벌 걸그룹을 만들어 보자’ 딱 거기까지만 논의가 된, 말 그대로 제로베이스 상태였습니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합류한 인정현 프로듀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방시혁 의장의 비전은 존재했지만, 세부적인 사업 계획은 전무한 미개척지였다. 인 프로듀서의 임무는 본사와 현지 스태프 사이의 ‘가교’가 되어 방 의장의 비전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가장 큰 난관은 K-팝의 핵심인 장기간의 트레이닝 시스템에 대한 현지의 뿌리 깊은 편견이었다. “기존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문화와 시장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시스템을 재창조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현지 상황에 맞춰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것부터가 제 역할의 시작이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만들어낸 손성득 총괄 크리에이터 역시 초기 하이브 아메리카를 돌아보며 소회를 밝혔다. 

이러한 문화적 오해와 편견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한 하이브 아메리카의 해답은 미디어 활용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드림 아카데미’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스타 아카데미’다. K-팝 신인 육성 과정을 전 세계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의도였다. 하이브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트레이닝 시스템이 아티스트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최첨단 ‘아카데미’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전세계 12만 명의 지원자 중 선발된 20명의 연습생들은 보컬, 댄스 트레이닝은 물론, 미디어 트레이닝, 인성 교육, 심리 상담까지 포함된 전방위적인 케어를 받으며 성장했다. 시청자들은 단순히 결과물인 ‘완성형 아이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평범한 소녀가 땀과 눈물을 통해 아티스트로 거듭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깊은 유대감과 진정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K-팝 시스템의 본질을 설득하고, 하이브의 철학을 세계 최대 시장의 문법으로 번역해내는 가장 효과적인 소통 방식이었다.

2023년 처음 세상에 공개됐던 '드림 아카데미' 멤버들

T&D의 재창조: ‘정원사’의 철학으로 아티스트를 키우다

‘더 드림 아카데미’를 통해 공개된 하이브의 T&D 시스템은 과거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손성득 크리에이터는 스스로를 아티스트라는 나무에 물과 거름을 주는 ‘정원사’에 비유한다. “과거처럼 정해진 틀에 아티스트를 맞추는 방식이 아닙니다. 요즘의 T&D는 아티스트가 가진 고유한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이는 기술 교육을 넘어 심리적 어려움을 돌보는 멘탈 케어까지 포함된 전인격적 지원을 의미한다.

이러한 철학은 ‘드림 아카데미’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참가자들을 등급으로 나누는 대신 각자의 강점을 존중하고,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정형화된 춤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참가자가 있을 수 있지만, 저희는 그것을 그 참가자만의 ‘다른 표현 방식’으로 보고, 어떻게 개성을 발전시킬지 함께 고민했습니다.” 손성득 크리에이터의 말이다. 그는 시스템이 아티스트를 가두는 틀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안전망이자 발판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캣츠아이 멤버들의 다양한 국적, 인종, 문화적 배경은 이러한 철학 아래 하나의 유기적인 팀으로 융합될 수 있었다. 개개인의 특별함을 존중하고 그 다름이 시너지를 내도록 돕는 것. 이것이 바로 하이브 아메리카가 재창조한 K-팝 T&D 시스템의 새로운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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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김도헌 ( realzenera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