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의 MMA 2025, 한국적 美를 입다
2025.12.22 | by Young Shin지난 12월 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2025 멜론 뮤직 어워드(MMA)가 열렸다. 지드래곤, 에스파, 엑소, 올데이 프로젝트 등 세대를 아우르는 아티스트들이 무대를 채운 가운데, 2019년 이후 약 6년 만에 국내 시상식 무대에 오른 제니의 귀환은 단연 화제였다.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무대 장악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만큼 강렬하게 회자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제니가 선택한 두 벌의 드레스. 이날 제니가 선택한 무대 의상은 단순한 스타일링을 넘어, 가장 한국적인 요소를 가장 동시대적인 언어로 풀어낸 하나의 장치처럼 기능했다.

"Seoul City" 무대에서 제니는 약 15미터 길이의 거대한 베일을 쓰고 등장했다. 베일에는 한글로 기록된 최초의 노래 가사집 ‘청구영언(靑丘永言)’의 구절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오늘이 오늘이소서 / 매일이 오늘이소서”로 이어지는 문장은 ‘지금’이라는 시간을 붙잡는 동시에, 무대 위 인물이 자신의 기원과 정체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젠' 뮤직비디오 속 제작 의상으로 한국의 미를 드러낸 브랜드 르쥬는 이 베일이 얼굴을 가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자신의 기원과 정체성을 마주하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태극기의 푸른색을 중심으로 한 톤 역시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익숙함과 안정감, 그리고 그 안에서 출발하는 감정을 은유한다. 제니가 한글날을 기념해 ‘젠 세리프(Jen Serif)’를 선보인 바 있는 만큼, 한글과 한국에 대한 애정이 이번 무대에서도 명확히 읽힌다.

이어진 무대에서는 ‘반가사유상’의 복식에서 영감을 받은 가운이 공개됐다. 구조적인 어깨 라인, 병아리 매듭 노리개가 더해진 디테일은 고요하면서도 단단한 아름다움을 만든다. 과장된 장식 대신 절제된 조형미를 택한 선택이 오히려 한국 조형 예술이 지닌 균형과 정신성을 현대적인 실루엣 안에서 더욱 살아나게 한다.

"Zen"에서는 한복의 동정과 고름 실루엣을 서양 복식의 코르셋 구조와 결합한 디자인이 등장했다. 하의에는 펜화 기법을 활용해 노리개와 은장도 등 한국 공예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담겼고, 생사(生絲) 댕기 매듭 디테일이 볼륨을 더한다.

마지막 곡 "Like Jennie"에서 제니는 자신의 이름 ‘제니’를 약 2,000회 반복해 금박장 기법으로 새긴 재킷을 입고 등장했다. 제작에만 200시간이 소요된 이 의상은 단순한 무대 의상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내며 스스로를 증명해온 시간의 기록을 상징한다. 르쥬는 이 재킷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언어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현대적인 여성상”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의 레코드'를 받았을 때 입은 드레스는 불국사 석가탑의 형태적 균형미에서 착안한 컷아웃 디테일을 핸드 드레이핑으로 구성했다.
이날 공연에는 약 50명의 댄서가 함께했고, 댄서들의 의상 또한 서사의 일부로 작동했다. 전통 사폭 바지와 저고리, 행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은 제니를 호위하는 인왕(仁王)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 제니는 ‘서울관광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된 이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서울의 결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음악과 패션, 퍼포먼스를 가로지르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세계 무대에 자연스럽게 각인시키는 방식이다. 이번 MMA 2025 무대 역시 한국적 미학이 팝 문화 안에서 어떻게 현재형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전통을 재현하지 않고 현재로 끌어오는 제니라는 존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