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 곧 글로벌이라고 생각해요” 더블랙레이블 리정 안의 빛나는 확신
2025.08.29 | by Kwon Saebom“Soda Pop”, “How It’s Done”의 안무가가 말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그리고 장르가 된 K팝.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또다시 기록을 갱신했다.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본 영화에 등극한 것에 이어, 빌보드 메인 차트인 HOT100 정상에 두번이나 오른 것. K팝을 주제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영화 흥행을 넘어 K팝 역사상에서도 의미있는 지표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K팝이 세계에서 이처럼 사랑받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에서 분석할 수 있다. K팝은 언제나 음악과 더불어 퍼포먼스, 그리고 안무라는 두 축이 균형을 이루며 진화해왔다. 아이돌 뮤직비디오에 퍼포먼스 영상이 필수처럼 따라붙고, 컴백 프로모션마다 댄스 챌린지가 수반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K팝은 음악과 퍼포먼스가 함께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처럼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역시 음악과 어우러진 안무가 주는 시각적 쾌감이 시청자를 가상의 아이돌 그룹에 더더욱 몰입하게 만들었고, 이는 K팝 특유의 퍼포먼스가 지닌 힘을 다시 한 번 증명한 또다른 사례다.
특히 극 초반부, 헌트릭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는 “How It’s Done”은 비행기에서 뛰어내는 걸그룹이라는 비현실적 상황을 과감한 안무와 함께 보여주면서 관객을 헌트릭스라는 낯선 캐릭터에 단숨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또 사자보이즈의 ‘“Soda Pop” 은 실제 K팝 아이돌들의 연이은 챌린지 참여로 안무가 확산되며 작품의 열기를 더욱 고조시킨 흥행의 숨은 주역.
이 시점에서 빌보드코리아가 “How It’s Done”과 “Soda Pop”두 무대를 설계한 안무가, 더블랙레이블 소속의 댄스 겸 안무가 리정을 만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그녀가 겪은 짜릿한 경험에 대해 물어보았다. 춤을 출 수록 더욱 확신하게 된다는 리정. “‘Choreography by me’라는 문장을 정말 좋아해요. 저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말이죠”라며 빛나는 눈으로 마주보는 사람. 리정과의 대화에서 한국에서 태어난 안무가로서 바라본 ‘글로벌’과 왜 K팝이 이토록 사랑받는지를 짐작케 만드는 창작자들의 빛나는 헌신까지 엿보았다.
첫 미팅 때부터 제작진들로부터 깊은 인상 받았다고요
어느 정도냐면, 한동안 그 여운이 가시지 않을 정도였어요. 첫 미팅 자리에서 모두가 열정적으로 “우리가 왜 이걸 하고 싶고, 왜 당신이 필요하며, 이 영화가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를 설명하는데, 그 뜨거운 눈빛에서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졌거든요. 어쩌면 낙천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저는 창작자가 자기 작품을 설레는 눈빛으로 설명할 때 그 결과물은 분명 잘 나올 수밖에 없다고 믿어요. 그래서 듣는 순간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 그리고 반드시 잘 될 거다’고 생각했죠.
작업을 이어가면서 그 확신은 점점 커져갔나요?
여러 미팅을 거치고 나서 곡을 받았는데 일단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그러니 확신이 커져나갈 수밖에요. 이미 ‘꿈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축복인데, 춤에 기반이 되는 음악 퀄리티까지 보장되니… 매 순간 행복하다는 생각과 함께 또 한 번 저의 신념을 확신하게 되었어요. 바로 ‘그래, 이렇게 자기의 목표와 꿈에 확신이 있는 사람은 정말 잘될 수밖에 없구나’라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주는 상상력의 확장이 “How It’s Done”’에서 폭발했다고요
“How It’s Done” 미팅 당시가 아직도 생생해요. 제작진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공연장에 도착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라고 말하는데, 그 순간 ‘나도 한계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올랐거든요.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등장하는가’인데, 헌트릭스 세 멤버가 하늘에서 뛰어내린다는 설정만으로도 머릿속에 이미 그림이 완성됐죠. 덕분에 안무 역시 평소 작업하던 것보다 훨씬 과감하고 폭발적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단순히 힘을 더 주는 정도가 아니라, 제 에너지와 상상력이 그대로 녹아든,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안무를 짰거든요. 춤추는 사람으로서, 지금 떠올려도 설렐 만큼 강렬한 기억입니다.
수많은 창작자들과 함께한 이번 프로젝트가 리정에게 남긴 가장 큰 배움은 무엇인가요
모션 캡처를 위해 미국을 오가며 반복했던 과정, 수없이 다듬어진 안무와 음악, 캐릭터와 스토리라인까지 모든 요소에 제작진의 노력이 꽉 담겨 있거든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사활을 걸었던 걸 알아요. 저는 그중 극히 작은 몫을 했을 뿐이고, 모두의 에너지가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러니 그 과정을 지켜보며 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같은 에너지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1'은 20대 초반의 리정, 리사의 “Money”는 25살의 리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리정에게, 이번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어떤 의미로 남는 작품인가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3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쌓인 지금의 리정이에요. 1분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지만 그 안에는 제가 쏟아낸 연습과 경험, 그리고 성숙이 압축돼 있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안무 작업을 넘어, 제게는 자부심과 시간을 증명하는 하나의 기록이죠. 그리고 또 하나, 애니메이션은 누군가의 유년 시절을 평생 기억으로 남게 하는 특별한 장르잖아요. 그 이야기의 소재로 K팝이 선택됐다는 건, 이제 그런 역할까지 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Mnet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WSWF)'에서 사위티(Saweetie) 안무 미션 때 “한국팀만의 K팝스러움”을 강조하던 모습이 유독 인상적이었는데요. 리정님이 생각하는 K팝만의 고유한 감각은 무엇일까요?
미션 당시 한국팀 안무를 지켜보던 글로벌 팀들이 “정말 K팝같다”라고 말하는 순간, 깨달았어요. 아, K팝은 이제 정말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고. 그 장르적 특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원래 예술이란 게 그렇잖아요. 누군가 한눈에 보고 ‘ K팝스럽다’라고 느낀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조심스럽게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 고유한 감각을 만드는 건 바로 ‘민족성’이라고 봐요. 한국인만의 언어적·문화적 특징, 빠른 발전 속도 같은 요소들이 모여 지금처럼 세계에서도 통하는 장르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으로서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시각적 퍼포먼스가 중요한 K팝에서, 좋은 안무란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제 기준은 단순해요. 그냥 ‘좋은 안무는 정말 좋은 안무다’. 너무 포괄적이다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기준이기도 하죠.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하고, 그 결과로 곡이 더 크게 주목받는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안무이지 않을까요? 동시에 곡의 메시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전달되되 뻔하지 않은 접근을 보여주는 것. 그 균형을 맞추는 일이 분명 어렵지만, 결국 매 시즌 안무가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리정이 생각하는 리정 안무의 매력은
저는 제 안무가 정말 ‘맛있다’고 생각해요(웃음). 멋지거나 거창한 표현은 아니지만, 안무가로서 지향하는 바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에요. 매 순간 ‘이보다 더 잘 짤 수 없다’는 경지에 닿기 위해 노력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아티스트가 제 안무를 소화했을 때 “이건 더 이상 잘 나올 수 없다”라는 확신이 드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 그게 제 목표입니다.
그간의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리사님의 “Money”요. K팝 안무만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했던 작품이거든요. 저는 확신이 서면 안무가 굉장히 빨리 나오는데, 이 곡은 하루 만에 완성됐죠. 제 기준에서 ‘누구도 이 이상 잘 짤 수 없다’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던 작품이고, 다행히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셔서 2021 MAMA에서 올해의 안무가 상까지 받을 수 있었죠. 제 첫 수상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감사하고 의미 깊은 작업입니다. 무엇보다 아티스트가 정말 멋지게 소화해 주었고요!
다양한 K팝 아티스트와의 안무 협업이 댄서라는 본업에도 큰 자극이 된다고요
춤이 직업의 일부인 아티스트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분들이 저보다 더 진심으로 춤에 임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큰 귀감이 돼요. 스스로 어디서 빠지지 않게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에너지에 때때로 놀랄 정도로요. 그런 순간마다 ‘나에겐 타협이란 평생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죠. 더더욱 더 정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감사하죠.
개성이 강한 뮤지션들의 안무를 만들 때 나만의 소통법은
일단 그 곡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하려고 해요. 그리고 아티스트가 그걸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은지 직접 묻거나, 어렵다면 회사를 통해서라도 꼼꼼히 확인하죠. “이 곡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이 제 작업의 출발점이에요. 그 답변을 바탕으로 제 해석을 더하는 거죠. 결국 아티스트, 곡을 만든 사람, 그리고 저, 이 셋 사이의 최적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접점을 찾는 순간, 안무는 스스로 힘을 갖고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거든요.
점점 더 활동의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리정을 지금은 어떤 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저를 틀 안에 가두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스스로를 어떤 한 단어로 정의내리고 싶지은 않아요.(웃음) ‘나는 춤과 함께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게 지금 제 가장 큰 질문이자 과제이고,그렇기에 제 미래가 늘 기대가 돼요. 이렇게도, 저렇게도 가보고 싶고, 결국 제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으니깐요
K팝 시장 한 가운데서 활동하는 입장에서, 전 세계가 K팝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확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함께한 아티스트들을 떠올려보면 모두 자기 확신이 굉장히 강했거든요. 각자의 비전이 뚜렷하고, 이미 이룬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이 산업을 만들어가니 팬들은 그 확신과 에너지를 함께 느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K팝은 계속 성장할 수밖에 없고, 이 나라의 문화가 발전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리정님이 직접 체감하는 K팝의 존재감은 얼마나 달라졌나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요. 제가 미국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마침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을 때였거든요. 엄청난 신드롬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이 아티스트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 K팝이란 장르가 무엇인지”를 일일이 설명하고 다녀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죠. K팝, 혹은 코리아라고 말했을 때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요. 이제는 ‘K’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거예요.
협업하고 싶은 글로벌 팝 아티스트는
BTS요. 이제는 BTS가 단순히 K팝을 넘어 그 이상을 만들어내는 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해외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물론 의미가 크지만, 글로벌 음악을 이야기할 때 K팝을 제외하고 논할 이유는 없잖아요. BTS는 K팝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키면서도 동시에 글로벌 무대를 확장해낸 팀잖아요. 저 역시 K팝이 곧 글로벌임을 증명하는 창작자가 되고 싶기 때문에, 더더욱이 꼭 함께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리정의 다음 챕터를 그려본다면
저는 언제나,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을 항상 해낼 겁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