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는 어떻게 같이 성장할 수 있을까?
2025.11.02 | by Lee Maroo진의 앙코르 팬콘서트 '#RUNSEOKJIN_EP.TOUR_ENCORE'는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변 같다

2024년 6월 12일 전역한 진(JIN)의 맨 첫 번째 공식 일정은 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방탄소년단(BTS) 정도 되는 스타가 전역 다음날인 6월 13일 행사를 잡았다는 것,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팬들을 만나는 이벤트인 ‘허그회’ 시간을 행사에 포함했다는 것은 전적으로 아티스트의 자발적인 의지에서 비롯했음을 의미한다. 마침 6월 13일은 BTS의 데뷔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BTS는 매년 데뷔일을 전후로 팬들의 축제인 'FESTA'를 펼쳐왔다. 아직 군대에 있거나 복무 중인 다른 멤버들을 대신해, 맏형은 빌빠르게 아미(Army)들은 먼저 만난 것이다.
그리고 11월 첫 솔로 앨범 HAPPY를 발매한 것에 이어, 올해 5월에는 2번째 EP Echo를 발표하며 활발한 음악적 활동을 펼친다. 그 후 바로 첫 솔로 팬콘서트 '#RunSeokjin Ep. Tour'의 여정이 시작됐다. 한국 고양 종합운동장에서 스타트를 끊은 투어의 명칭이 된 ‘RUN SEOKJIN(달려라 석진)’은 진이 제대 직후 시작한 유튜브 예능의 이름이다. 그리고 ‘달려라 석진’이라는 이름 또한 2015년 8월 시작된 ‘방탄소년단’ 자체 예능 ‘달려라 방탄(Run BTS)’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런 생각을 결국 하게 된다. “이 사람… 팀에 얼마나 진심인 거지?”
2018년, 방탄소년단 정규 앨범 LOVE YOURSELF 結 ‘Answer 수록곡으로 진이 솔로곡 “Epiphany”를 공개했을 때, 많은 아미들은 보답 받은 기분을 느꼈다.
‘진이 이런 마음을 노래로 전하고 싶은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공유 받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BTS는 데뷔 초부터 많은 것들을 팬들에게 공유해온 팀이다. 짧은 비하인드 영상 ‘방탄 밤’과 블로그, 멤버들이 직접 운영하는 트위터.. 그들의 엄청난 성공 이후에 많은 팀들이 BTS의 성공 원인을 ‘친근함’과 ‘끝없는 소통’이라 분석하며 이를 공식처럼 답습했지만 사실 무엇보다 팬들이 BTS를 좋아했던 것은 자기 자신이 솔직하게 투영된 노래들이었다. 좋아하는 아이의 SNS 좋아요를 누를까 말까 망설이고, 꿈을 찾아 고민하고, 떠나온 숙소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다가, 나고 자란 고향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솔로곡의 제목 “Epiphany”는 ‘갑작스러운 깨달음, 계시’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I’m the one I should love(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앞서 2017년 발표한 진의 첫 솔로곡이자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한 “Awake”의 제목 또한 '깨어난', '깨달은' 상태를 지칭한다. "믿는 게 아냐 버텨보는 거야, 나 할 수 있는 게 이것 뿐이라서"라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도입부 가사부터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일찌감치 ‘월드 와이드 핸섬’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등 자존감 높아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랩, 프로듀싱, 보컬, 댄스 등 또렷한 포지션을 가진 멤버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듯 보이기도 했던 진의 초기 솔로곡들은 그가 음악으로 전한 고민의 답변처럼 느껴졌다. 장난스럽고 엉뚱한 감각으로 '맏내(맏형이지만 막내 같다)'라고 불리는 멤버였지만 가장 과감할 때도 있었다. BTS가 대상 4개를 수상한 2018년 MAMA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사실 올해 초 멤버들끼리 해체를 고민할 정도로 무척 힘들었다”라는 솔직한 심경을 용기있게 털어 놓았던 순간처럼 말이다. 당시 예상치 못한 발언에 멤버들은 놀라면서도 또 함께 공감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가 하면 느닷없이 코믹한 “슈퍼 참치”를 발표하며 ‘여러분 너무 진지해 지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금방 빗장을 푸는 것 또한 그다운 면모였다.

다시 앵콜 콘서트 현장으로 돌아와서, 2025년 10월 31일 수만 명의 사람 앞에 서른 두 살의 진이 서 있다. “Running Wild”와 “I’ll be There”를 부르며. 10월 31일, 11월 1일 이틀 동안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진행된 이번 앵콜콘은 공연일 3주를 앞두고 결정됐다. 갑작스러운 공연 공지에 팬들이 깜짝 놀라자 진은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를 찾아와 “3주 뒤에 가능한 경기장이 나와서 고민하다가 그냥 했다. 단체 앨범 중이라 고민을 하긴 했지만 일단 저질러 봤다”라고 밝히며 아무렇지 않게 또 팬들에게 한 걸음 성큼 다가갔다.
“아쉬움없이 마무리하고 싶어서 이렇게 넓은 곳으로 마련했어요!” 공연 초반부 진이 한 말이다. 일본과 미국, 런던과 암스테르담 등 총 9개 도시에서 열린 단 18회의 공연으로 이미 7월과 8월, '빌보드 월드 탑 투어(Billboard World Top Tours)' 차트 순위권에 들었던 솔로 팬 콘서트를 마치고 또 어떤 아쉬움이 있었던 걸까? 잠시라도 틈이 생기면 뜨겁게 ‘김석진’을 외치고, 곡마다 구호와 응원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팬들의 사랑 앞에서 “달려라 석진, 이 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무대 위 진은 정말로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팬 콘서트의 컨셉트도 그다웠다. 모든 곡을 부르기 전에 앞서 ‘도전!’을 외치고, 틈틈이 팬들과 게임을 진행하는 것. ‘모든 구간이 가장 특별한 손님인 아미에게 주어진 미션’이라는 기획에 따라 진이 맞추는 문제의 개수에 따라 다음 곡 의상이 정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공연 첫째날인 10월 31일, 진과 달린 것은 아미 뿐만이 아니었다. “슈퍼 참치” 무대를 가로지르며 제이홉(j-hope)과 정국(JungKook)도 함께 팬들을 향해 달려왔다. 제이홉의 “Kllin’t It Girl”, 정국의 “Standing Next to You” 무대가 진행된 이후, 멤버들은 BTS 곡 메들리가 펼쳐진 후반부 “So What” “My Universe” 구간에 깜짝 등장하며 특별한 "Jamais Vu" 무대 1절도 선보였다.

이번 앵콜 공연에서 첫 공개된 무대도 있었다. 피아노 연주와 함께 펼쳐진 3집 수록곡 “전하지 못한 진심”이다. 지민, 뷔, 정국 4명이 불렀던 곡을 혼자 소화한 진이 완성도에 못내 아쉬워하자 팬들은 연신 “완벽해!” “완벽해!”를 외치며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아미들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제이홉)”, “정말 팬들을 생각한 콘서트(정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진이 자신의 방식대로 팬들과 함께 10년 넘게 쌓아온 서사는 아름답고, 공고하고, 무엇보다 유쾌했다. 무대 위에 누워 “The Astronaut”을 부를 때, 진이 바라본 밤하늘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2017년 이후 8년 만에 무대에서 선보이는 진의 첫 솔로곡 “Awake”, 미니 2집 수록곡인 “Nothing Without Your Love”… 무대에 오른 아티스트가 부르는 멜로디와 소절이 모두 진솔한 고백이자 러브송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이었다.


첫째 날 콘서트 중간, 팬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다음 스테이지를 기다리는 동안 나온 곡은 BTS의 2018년 발매곡 “Magic Shop”이었다. 너무 힘든 날, 문을 열면 그곳에 우리가 있을 것이라고, 네가 나에게 보여준 만큼 나도 보여줄 것이라고 말하는 노래. “날 찾아냈잖아, 날 알아줬잖아” 서로를 발견한 사람들의 오랜 믿음과 여전히 순수에 가까운 애정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