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믿는 자에게만 허락된 영토, 악뮤가 초대하는 ‘소문의 낙원’

2026.04.08 | by 신영 ㅣ young.s@billboard.co.kr

AKMU - '소문의 낙원 (Paradise of Rumors)' M/V 캡처본

악뮤(AKMU)가 선공개곡 ‘소문의 낙원’으로 돌아왔다. 노래는 사랑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끝내 지쳐버린 한 나그네의 뒷모습에서 시작된다. 화자는 그에게 거창한 구원 대신 따뜻한 수프와 고기 한 접시를 내어주고, 다시 길을 떠날 수 있도록 조용히 등을 밀어준다. 거창한 서사도, 과장된 감정도 없다. 대신 반복되는 멜로디와 담담한 가사, 그리고 남매가 어린 시절을 보낸 몽골의 드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직비디오는 마치 오래된 동화책의 한 장면처럼 흘러간다. 유치해서가 아니라 순수해서, 그래서 더 낯설어진 감정이다.

악뮤는 이번 곡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내던 어떤 감각을 꺼내 든다. 오래된 상자 속에 넣어둔 채 먼지가 쌓여버린 마음, 의지, 그리고 믿음 같은 것들이다. 한때는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냉소적인 현실에 부딪혀 쉽게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망설여지는 가치들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누구나 각자의 ‘어떤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일까. “소문의 낙원”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낙원은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는 이미 비슷한 질문을 수도 없이 반복해왔다. 사랑과 우정, 관계와 신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대부분의 답은 회의론으로 기울기 일쑤였다. “그런 게 어딨어”라는 말이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등장하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다른 방향을 택한다. 낙원은 찾아 나선다고 발견되는 곳이 아니라, 오직 믿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영토라고 말한다.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아닐지라도, 그 여정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오히려 그 길 위에 있는 시도와 용기가 이 차가운 세계의 온기를 데우고 세상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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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메시지는 곡의 비주얼에서도 이어진다. 3분 37초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이찬혁과 이수현이 ‘주인공’처럼 보이는 순간은 길지 않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들은 수많은 인물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중심에 서기보다 함께 존재하는 방식, 각자의 리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느슨한 조화는 악뮤가 정의하는 낙원의 형태를 구체화한다. 늘 주목받아야 했던 자리에서 벗어나 군중 속에 스며든 채 한층 편안해진 이수현의 표정은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건네는 하나의 쉼표와도 같다.

이번 신보는 악뮤에게도 중요한 변곡점이다. 2년 만의 신보이자 정규 앨범으로는 7년 만의 귀환이다. 동시에 오랜 시간 몸담았던 YG를 떠나 독립 레이블 ‘영감의 샘터’에서 선보이는 첫 작업이기도 하다. 거대한 시스템을 벗어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이들은 오히려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세련된 기교 대신 ‘슴슴한’ 본질을, 영어 가사 대신 정갈한 한국어를, 자극적인 사운드 대신 여백을 선택한 것은 지금의 K-팝이 놓치고 있는 감각에 대한 조용한 제안처럼 들린다.

슬럼프라는 긴 겨울을 지나 스스로 꽃을 피워낸 남매의 서사가 담겨있기에 이 위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얻어낸 평화는 듣는 이에게 강력한 전염성을 발휘한다. 결국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정말 낙원이 있을까?” 노래가 끝날 때쯤이면 대답은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있다고, 아니 믿고 싶다고.”

안 가봤는데도 알겠다. 지금 이 순간, 악뮤의 음악이 그 낙원에 가장 가까운 형태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