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표면과 내면이 만날 때, 라이즈의 새로운 오디세이, "Fame"의 여정

2025.12.15 | by Billboard Korea

고요와 정적에 집중했던 전시에서 폭발적인 내면을 분출한 타이틀곡까지. 라이즈가 싱글 Fame 활동을 통해 써내려간 새로운 여정

Courtesy of SM Entertainment

'정’보다는 ‘동’에 늘 가까워야 하는 K-팝 아티스트에게 과연 고요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지난 11월, 라이즈(RIIZE)가 전시 ‘고요와 파동 Silence: Inside the Fame’ 소식을 전해 왔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이다.  11월 24일 발매된 싱글 Fame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11월 16일~30일까지 일민미술관 에서 진행됐던 전시 팸플릿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라이즈(RIIZE)의 이름은 성장과 실현의 지향을 담고 있다. 이들에게 성장이란 단순히 상승을 향한 욕망이 아니라, 미성숙함과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이로써 자신을 다시 정의하는 일로 규정된다. 이것은 새로운 무언가가 되는 경험이다 (중략) 명성과 두려움, 환호와 침묵이 혼재하는 곳에서 라이즈가 전하는 사운드, 이미지, 그 속에 스민 불완전한 진심은 우리가 삶의 한 순간에 어떤 식으로든 통과해야 하는 성장-실현의 경험을 닮았다. 

그렇게 가장 먼저 공간에 들어섰을 때 마주한 것은 멤버들의 초상이었다. 아주 느릿한 최소한의 움직임만이 적용된 프린팅 액자에 각각 걸린 멤버들의 얼굴. 귀를 단번에 사로잡아야하는 멜로디도, 음악에 맞춘 적절한 교차 편집과 컷 전환이 익숙하게 이뤄지는 영상 문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처럼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약속한 고요 속에서 멤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정성스럽게 인쇄되어 배치된 앨범 컨셉트 이미지들, 멤버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느긋하게 엮어 풀어낸 장장 21분에 달하는 인터뷰 필름까지. 


전시장을 떠나면서 질문은 조금 바뀌었다. K-팝 아티스트에게 초상이란 대체 뭘까?  수많은 시선이 쏟아지는 일차적 대상이 되지만 또 모든 개인에게 가장 고유하고 독립적이기도 한 것.  비록 그것이 앨범 콘셉트에 맞춘, ‘만들어진’ 찰나의 얼굴일지라도 그 얼굴과 목소리 자체를 조용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은 5월 발매된 첫 정규 앨범 ODYSSEY 라는 여정을 마친 이후 팀의 첫 행보를 조금 다른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분명한 계기가 됐다.


2023년 9월 데뷔한 라이즈의 첫 번째 정규 앨범 ODYSSEY-The 1st Album 커버

지난 5월 19일 발매된 라이즈의 첫 번째 정규앨범 ODYSSEY- The 1st Album 는 SM 엔터테인먼트의 공력이 여실하게 느껴지는 앨범이었다. 연주곡 “Passage” 비주얼라이저를 포함 수록곡 10곡 전체의 개별 영상이 공개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다수의 곡들이 기존 라이즈가 내세우던 ‘이모셔널 팝’ 장르보다는 SM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처럼 보여졌던 연유가 가장 크다. 초기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의 팝 발라드곡 문법을 충실히 따른 “모든 하루의 끝 (The End of the Day)”나 “Inside My Love” 같은 넘버, NCT 127 곡이라고 해도 자연스러울 “Bag Bad Back”, 샤이니, 특히 키의 코러스 보컬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잉걸 (Ember to Solar)” 등.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런 시도는 SM의 적자로서 라이즈라는 팀의 정체성을 선언하듯 느껴지는 한편, 라이즈의 독자적인 음악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다소 물음표를 그리게 하는 면도 있었다. 특히 로큰롤 사운드에 드라마 Glee 의 한 장면 같은 뮤지컬 무드를 영상으로 구현한 타이틀곡 “Fly Up”이나 악기의 존재감이 뚜렷한 마지막 트랙 “Another Life” 같은 넘버를 제외하면, 기타나 브라스 사운드 같이 라이즈가 구축해왔다고 느껴진 장르적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트랙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그 여정 이후, 고요와 파동이라는 단어가 암시한 적막을 걷고 공개된 싱글 Fame의 첫 번째 트랙 “Something’s in the Water”은 ‘I couldn't save us in time I don't do good by myself’라는 자기반성적인 가사를 실은 앤톤의 섬세한 보컬로 문을 연다. 발산하기보다 내부로 침전하는 쪽을 택한 게 명백한 “Something's in the Water” 뒤를 뚫고 터져나오는 것은 “Fame”의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다. 한결 성숙해진 라이즈의 음악적 질감을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타이틀곡에 이어 등장하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Sticky Like”는 피아노와 드럼, 기타 선율 위로 선명한 보컬이 얹어지는 멜로디컬한 곡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정적과 고요한 이미지들 때문일까? 음원 공개 한 시간을 앞둔 24일 오후 5시 진행됐던 컴백 프리미어 쇼케이스에서 뮤직 비디오 상영에 이어 “Fame” 무대가 시작됐을 때, 곡의 울림은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선명하고 크게 전해졌다. “Shout, loud, cry, tears,Fear, pain, but keep going All I did it for My love, not fame” 명성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그게 지금 내가 노래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또렷한 외침. 

11월 24일 개최된 라이즈 컴백 프리미어 팬쇼케이스

라이즈의 이번 음악 방송 활동은 컴백 1주차 사전녹화로 진행됐던 SBS 인기가요, 그리고 2주차 KBS 뮤직뱅크 2회에 그쳤다. 대신 2025 MAMA AWARDS 와 2025 Asia Artist Awards 의 무대에 올라 퍼포먼스와 라이브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무엇보다 비슷한 시기 다른 보이 그룹들이 ‘돈, 멋, 명예, love and what? (Cortis-“What You Want”)’,Let's get money, let's get famous (BOYNEXTDOOR-“Hollywood Action”)라며 욕망을 적시할 때 라이즈는 이를 우회해 다른 가치를 이야기하는 쪽을 택했다. 일반적이라 여겨지는 욕망의 종착지를 다른 곳에 둠으로서, 계속 성장의 여정을 자연스럽게 걸어갈 것을 약속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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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IZE 라이즈 PHOTO EXHIBITION ‘Silence: Inside the Fame 고요와 파동’ Behind

앞서 진행된 전시에서 공개된 인터뷰 필름에서 멤버들은 성장과 불안에 대해 각각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은석에게 성장은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속도가 느려도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면 괜찮다고 믿는다. 멤버들과 함께 웃을 때 스스로 괜찮다는 신호를 감지한다는 성찬에게 불안감의 반대점에 선 ‘안정감’은 멈추는 게 아니라 흔들려도 중심을 잃지 않는 상태다. 원빈은 무대에 집중할 때, 그 순간 느껴지는 행복과 자유로운 감정 때문에 무대에 계속 오른다. 진정성 있는 표현이 자기 강점이라고 말하는 소희는 긴장감이 야기한 떨림이 곡에 온도를 선사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안다. 앤톤은 쉽게 만족감을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그 사실조차 회피하지 않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오직 나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외로움을 기꺼이 안고 나아간다. 팀의 중심에서 퍼포먼스나 정서적인 안정감을 선사하는 맏형 쇼타로는 긴장감을 잃지 않되 항상 ‘지금’에 집중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이 실로 안경을 묶어서 (라이즈) 6명의 실은 끊기지 않는다는 표현하려고 합니다. 라이즈의 끈끈함이 끊기지 않겠다는 목표를 담았습니다” 추후 공개된 전시 영상 비하인드에서 쇼타로가 작품을 설명하며 남긴 말이다. 어쩌면 정말로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의 마음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다양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마음이나 바람은 보는 이들에게도 분명한 파동을 일으킨다. 라이즈의 다음을 계속 응원하고 기대하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