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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그래미 어워즈, 케이팝이 도달한 새로운 경계선

2026.02.03 | by Billboard Korea

케이팝이 마침내 철옹성 같던 그래미의 벽을 흔들었다. 2026년 그래미 어워드를 관통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K-컬처의 약진이다. 올해 시상식에서 K-팝 관련 작품들은 총 11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주류 팝 음악 시장의 지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로제의 "APT."는 그래미의 핵심인 ‘제너럴 필드(General Field)’ 4대 본상 가운데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에 동시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장르 부문까지 포함해 총 세 개 부문에 지명됐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OST "Golden"은 본상 후보를 포함해 다섯 개 부문에서 경쟁했고, 하이브와 게펜 레코드가 합작한 걸그룹 캣츠아이는 ‘신인상’과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등 두 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여기에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까지 ‘최우수 뮤지컬 시어터 앨범’ 후보에 오르며, 올해 그래미 후보군 안에는 유독 한국과 연결된 작품들이 두드러졌다.

비록 주요 부문 수상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올해 그래미가 보여준 후보 구성만으로도 K-팝이 이미 변방의 장르가 아니라, 주류 음악 산업의 내부에서 평가되고 논의되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확인시켜준 순간이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billboard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Golden"이 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부문을 수상했다. K-POP 작곡가·프로듀서가 그래미 정식 부문에서 트로피를 거머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상 발표는 로스앤젤레스 피콕 시어터에서 진행된 사전 시상식에서 이뤄졌으며, ‘골든’ 작곡에 참여한 이재(EJAE), 테디(Teddy), 24(투애니포), 아이디오(IDO·이유한·곽중규·남희동)가 한 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부문은 영화·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를 위해 제작된 노래 중 송라이터의 성과를 평가하는 상으로, 작품성·완성도가 동시에 인정돼야만 수상할 수 있는 분야다.

한국계 음악인이 그래미에서 트로피를 든 것은 과거 소프라노 조수미(1993), 음향 엔지니어 황병준(2012·2016)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K-POP 창작자가 그래미 현장에서 정식 음악 부문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최초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수상 직후 24는 “이 모든 과정에 함께한 스승이자 동료인 테디 형에게 이 영광을 바친다”며 소감을 밝혔다. ‘골든’의 핵심 제작진 대부분이 블랙핑크 작업으로 잘 알려진 테디 사단, 더블랙레이블 소속인 만큼 미국 자본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주제곡이지만 명확한 케이팝의 창작 DNA를 품고 있다는 평가다.

"Golden"은 애니메이션 성공과 함께 글로벌 차트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빌보드 핫 100 1위와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1위를 같은 시기에 달성하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우며, 2025년을 대표하는 글로벌 히트곡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본 시상식 트로피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골든"과 로제·브루노 마스의 "APT."는 모두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최종 수상에는 실패했다. 또한 "Golden", "APT.", 하이브·게펜 합작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의 "Gabriela"가 경쟁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역시 영화 ‘위키드’ OST "Defying Gravity"를 부른 신시아 이리보·아리아나 그란데 듀오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로제

@billboard

로제의 "APT."는 올해 그래미에서 세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K-팝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를 기록했다. ‘송 오브 더 이어’(올해의 노래), ‘레코드 오브 더 이어’(올해의 레코드)라는 그래미의 핵심 본상 두 부문과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까지 총 3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지만, 아쉽게도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후보 지명과는 별개로, 로제가 그래미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는 점은 상징성이 컸다. 그래미의 첫 무대는 항상 그해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가 맡는 자리로, K-팝 가수가 이 무대에 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로제는 브루노 마스가 직접 연주하는 하드록 기타 사운드를 기반으로 "APT."를 라이브로 선보였고, 공연 도중 객석의 빌리 아일리시와 마일리 사이러스 등 미국 팝스타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히며 큰 화제를 모았다.

사회자 트레버 노아는 공연 직후 “이 곡 제목은 한국의 술 게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며 유머를 더했고, “요즘 미국에서는 뉴스를 볼 때마다 술을 찾게 되는데, 그때마다 ‘아파트’를 외치면 되겠다”고 말해 관객의 웃음을 이끌었다.

캣츠아이

@grammys

캣츠아이는 2024년 8월 데뷔 이후 2년도 채 되지 않아 그래미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K-POP 신인 그룹의 성장 속도에 대한 기존 상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비록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래미 시상식에서 선보인 "Gnarly" 무대는 레코딩 아카데미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수많은 공연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관심을 모았다.

"Gnarly" 무대는 캣츠아이가 데뷔 이후 꾸준히 밀어붙여온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장면이었다. 캣츠아이는 데뷔 초부터 케이팝 문법에서는 상대적으로 보기 어려운 스타일링과 무대를 선보이며 “케이팝 그룹이 맞는가?”라는 논란의 중심에 놓이기도 했지만, 이들은 보수적 피드백을 수용하기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밀어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히려 미국 시장에서 더 강하게 작동했다.

2025년부터 이어진 롤라팔루자 공연과 북미 투어는 캣츠아이가 단순한 화제성을 넘어 ‘공연형 아티스트’로 평가받기 시작한 분기점이었다. 윤채의 묵직한 중저음 보컬은 ‘Gnarly’ 도입부의 핵심으로 자리잡았고, 격한 안무 속에서도 핸드마이크 라이브를 고수한 멤버들의 보컬 라인은 공연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었다. "Gabriela" 무대에서 선보인 다니엘라의 라틴풍 브레이크 댄스와 특정 멤버들의 성소수자 관련 발언은 이들의 메시지가 단순히 음악을 넘어 미국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성과 포용성의 언어를 능숙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캣츠아이의 팬덤 ‘아이콘즈’ 역시 이들의 독자적 세계관을 지지하는 중요한 축으로 성장했다. 그래미 레드카펫에서 멤버 소피는 “우리와 같은 꿈을 꾸고, 우리처럼 생기고, 우리처럼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며 그룹의 핵심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2026년에도 캣츠아이는 롤라팔루자, 코첼라 등 대형 글로벌 페스티벌에 연속 출연을 앞두고 있다. 그래미 후보 지명은 이들의 여정을 증명한 하나의 이정표일 뿐이며, 캣츠아이는 이미 다음 서사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들이 구축하는 새로운 케이팝의 형태는 여전히 확장 중이며, 그 성장은 당분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