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노래가 될 때, 강승윤의 다음 페이지
2025.11.04 | by Lee Maroo"이 노래 제 '플리'에 담고 갑니다. 이런 말이 정말 기뻐요"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르는 그 많은 곡을 쓰고도 여전히 강승윤은 자신의 노래를 사람들이 들어주는 게 가장 기쁘다고 말한다. 강승윤의 두 번째 솔로 앨범 PAGE 2 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소비되고, 닿기를 바라는 강승윤의 감정이 담겼다. 이토록 밀도 높고 솔직한 13개의 채운 앨범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기쁨이다.

12곡을 꾹꾹 눌러담았던 첫 솔로 앨범 PAGE를 발표했던 건 2021년 4월이었어요. 그리고 2025년 11월 3일, PAGE 2로 돌아왔죠. 꽤 긴 시간이 흐른 사이에도 ‘PAGE’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나요?
어떤 주제나 컨셉트를 가지고 앨범을 구성하지 않아요. 제게 앨범은 항상 꾸준히 만들어오던 음악들이 모인 단편집 같은 느낌이거든요. 나의 다양한 면모를 하나로 묶은 단위의 앨범을 ‘페이지’라고 부르자. 앞으로도 정규 앨범의 형태로 나오는 앨범은 이렇게 명명하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앨범의 곡들을 묶어 보니 결국 이건 내 두 번째 페이지구나 싶기도 했고요. 그리고 접을 때마다 계속 새로운 면이 생기는 종이처럼, 그런 면에서도 ‘페이지’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첫 번째 페이지와 두 번째 페이지 사이, 4년 반 가까운 공백 속에서 느껴왔던 순간들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곡은 항상 많이 준비가 되어있나 봅니다
그럼요. 항상, 계속해서 만들고 있습니다(웃음).
작년 12월 제대하고, 새 앨범을 준비하는 사이 올해 위너(WINNER) 콘서트로 팬들을 먼저 만났어요. 서울과 일본 공연, 그리고 아시아 투어까지. 오랜만에 선 무대는 어떻던가요
처음엔 멤버들과 걱정을 제법 했어요. 한국에서야 저희가 방송 활동도 드문드문 하고, 대학 축제나 개인 스케줄 등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해외 팬 분들은 코로나와 군대까지 포함하면 거의 5~6년을 기다려주신 거거든요. 아직도 그 분들이 우리를 기다려 주고 계실까? 그래도 일단 해 보자, 일단 우리를 보러 와준 분들을 위해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2회 예정이었던 공연이 3회로 늘어났을 정도죠.
그나저나 요즘도 여전히 크로플을 좋아하나요? 입대 전 인터뷰로 만났을 때 강승윤이 카페를 만들면 어떤 공간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 ‘크로플과 아포가토는 꼭 메뉴에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던 게 기억이 나거든요
입맛은 여전하고요. 다만 군대에서 10kg 넘게 찐 살을 빼느라 10개월 가까이 그런 음식은 거의 입에 대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생각하니 갑자기 먹고 싶네요(웃음).
직접 쓴 앨범 소개글을 보니 13곡 각각 감정의 키워드가 있더군요. 소망, 고뇌, 집착, 공허, 초연, 욕심 등… 이런 장치들이 곡을 설명하고 작업하는 데도 도움이 됐나요?
앨범을 준비하면서 이 앨범을 하나로 묶어주는 게 뭘까, 결과적으로 내가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 걸까 거듭 고민했어요. 1집은 ‘강승윤이라는 이름으로 된 앨범을 빨리 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뭘 보여줘야 할지 좀 더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군대 생활을 통해 사람들이 ‘위너’ 음악을 알아도 제 솔로 음악은 잘 모르는 걸 보면서 1집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한테 전달이 되지는 못했다는 걸 느끼기도 했거든요. 그런 한편 사람들이 기대하거나 상상하는 강승윤의 음악이라는 것도 있고요. 결론적으로는 모든 게 나라는 걸, 정하고 설득시키는 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다면성’이 가장 중요한 주제였던 것 같아요. 이 곡을 만들 때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다양한 내 감정과 모습들을 보여주자. 락, 댄스, 발라드, 장르와 관계없이 그냥 강승윤을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자는 구성을 하면서 저도 차츰 정리가 됐죠.
다양한 감정을 직시하는 것은 강승윤에게 중요한 일인가요?
사실 평상시에는 잘 들여다보지 못해요. 하지만 앨범 작업이라는 모멘텀이 생기거나, 음악과 관련되면 다르죠. 제 어딘가 저도 모르게 담겨있던 것들이 음악으로 ‘툭’ 나오게 되고 그러면서 저도 제 감정을 돌아 보게 돼요. 그리고 오히려 역순으로 공연을 통해 비로소 이 감정들이 진짜 내 것이었구나 라고 깨닫게 될 때도 있어요. 곡을 쓸 때는 분명 존재했지만 현실을 살면서 휘발됐다고 생각했던 감정인데 곡이 세상 밖에 나오고, 그 곡을 무대 위에서 부르게 되면 눈물이 나기도 하거든요. 1집에 수록된 “멍(BRUISE)”은 사실 부를 때마다 울컥해요.
타이틀곡 “ME (美)”는 젊음의 찰나를 담았습니다. 뮤직 비디오에도 길 위를 달리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등 질주하는 모습이 등장하죠. 강승윤이 이 시점 청춘을 이야기하기로 생각한 이유는
저는 스스로 열정이 있고, 뭔가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30대든 40대든 상관없이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분명 유스 컬처라는 것에 포함되는 음악을 하는 게 조금 어색할 수 있는 순간은 어쨌든 찾아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좀 더 젊고 혈기왕성할 때 이런 느낌을 남겨보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컸어요. 그리고 그런 기운을 영상을 보는 분들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10대, 20대 청춘은 사실 좀 되게 미화된 부분도 있잖아요. 청춘이 그럼에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나요
이번곡의 가사를 살펴 보면 이중성을 띄고 있어요. 부드러운 듯이 날카로운 눈빛, 어루만지듯이 찌르고,죽을 것 같이 살아있는 등… 그런 것들을 가사에 배치했거든요. 저는 그게 아름답게 느껴져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이것도 나 같고 저것도 나 같은... 그런 욕심은 젊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어른이 될수록 점점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하게 되죠. 개인적으로는 그런 기점이 더 젊지 않다고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어디 가? 주섬주섬 뭘 그렇게 찾아봐?’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5번 트랙 “분리불안”은 반려견 ‘토르’의 마음을 상상하면서 쓴 곡이라고요
비교적 최근에 쓴 곡이예요. 토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을까 상상하며 썼는데 그냥 사랑 노래로도 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애 초반 진짜 떨어지기 싫은 마음이나, 나한테 충분한 관심을 주지 않는 상대방이 원망이 있잖아요. 충분히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도 빗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죠.
맹목적이고 순수한 사랑 가사도 오히려 대상을 반려동물이라고 상상할 때 더 이입이 되기도 해요. 한편 가장 도전에 가까웠던 트랙은
요즘 음악 트렌드가 그렇기도 하고 제 솔로도, 위너의 음악도 워낙 많은 장르를 믹스해 왔지만 그걸 감안해도 “버선발”은 듣는 분들도 조금 독특하다고 느끼실 것 같아요. 영화 ‘광해’의 한 장면을 보고 제 머릿 속에서 펼쳐진 이미지를 만든 곡이거든요. 도망가다가 신이 벗겨지는 장면, 버선발로 달려 나가는 상상. 정말 제 머릿 속에 한 편의 퓨전 사극이 있어요. 그걸 영상으로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쉬워요(웃음).
앨범을 같이 작업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요? 한 레이블에 오래 소속된 게 어떤 장점이 있나요? YG 선후배들과 워낙 활발하게 교류하기도 합니다
장점들이 너무 많죠. 제가 주로 작업하며 시간을 보내는 작업실도 회사에 있고, 건물 안에 인하우스 프로듀서 형들 작업실도 있다 보니 서로 의사소통하기 굉장히 편리한 구조이기도 하고요. 익숙함은 장점이지만, 또 그들도 계속해서 새로운 걸 찾고 음악적으로 발전하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런 고민과 아이디어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죠. 외부적인 자극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할 때도 있어서, 그럴 때는 송캠프를 열거나 해외 프로듀서들과 작업하기도 하고요.

이번 앨범 크레딧에서 다니엘 시저와 루드비히 린델 콤비의 이름도 눈에 띄더군요. 소녀시대, 레드벨벳,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과 작업한 팀이죠
저희는 ‘시저 & 루이’라고 부르는데요(웃음). 최근 송캠프를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작업을 요청했어요. 사실 저는 혼자 곡을 스케치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워낙 익숙해요. 피아노 반주, 코드만 있는 기타처럼 러프한 루프에 혼자 멜로디를 작업하고 가사를 붙이거나 레이어를 쌓아나갈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고요. 하지만 다른 작업 과정을 통해 새로운 방식이나 여러가지 것들을 분명 배우게 되는 게 있다고 봐요.
아이돌 보컬리스트는 물론이고 밴드, 래퍼 등 다양한 분야의 뮤지션들과 교류도 활발합니다. 윤종신, 원슈타인 등이 참여한 1집에 이어 이번 앨범에도 슬기, 은지원, 호륜 등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는데
저는 혼자 음악을 하게 되면 결국 매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죠. 아마도 작사작곡편곡에 강승윤 이름만 올리는 일은 아마 제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피처링이든, 외부와의 작업이든 계속 소통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게 저에게 가장 재미있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그런 교류를 통해 싱어송라이터이자 위너의 메인 프로듀서로서 요즘 강승윤이 느끼는 신(Scene)의 흐름이 있다면?
이제는 음악과 공연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유명한 누구 공연이라고 무조건 가는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골라 넣는 주관이 생긴 것처럼 공연을 찾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죠. 요즘은 공연이 정말 많잖아요. 작은 규모부터, K-팝 그룹, 발라드, 페스티벌… 정말 공연장 예약을 하는 게 힘들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거든요. 확실한 타겟층을 가진 분들이 공연을 잘 해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내 역할을 뭘까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이번 앨범 활동을 통해서 또 알아가겠죠. 나만이 할 수 있는 무대는 무엇일지.
고등학생이던 2010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에 출연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고, 2013년 솔로곡 발표, 2014년 위너 데뷔 이후 10년 넘게 달려왔어요. 그 과정에서 연주자이자 보컬,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싱어송라이터로서 재능 있다는 말을 항상 들어왔죠.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을까요? 창작의 근원이 소진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순간일 수도 있고요
‘잘한다’, ‘재능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는데요. 사실 제가 컨텐츠에 출연하거나 라이브를 했을 때 댓글로 지적하는 분들이 꽤 있어요(웃음). 평가 받는 게 당연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처음 모습을 보여서인지 정말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 꽤 많거든요!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칭찬에 매몰되거나 심취하지 않고 항상 사람들이 내가 보인 결과물에 납득하게끔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아요.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기에 저는 재능있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봤거든요. 그게 언제까지 빛을 발하고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사실 그 순간에는 그들이 가진 재능이 너무나 탐스럽고, 압도되고, 또 부러운 게 사실이에요. 저 재능을 내가 가질 수는 없어, 그래도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걸 만들어 보자,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에 늘 중점을 두고 나아가죠.

PAGE 2를 들은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해주면 가장 기쁠 것 같나요
강승윤은 멈춰 있지 않았구나, 1집에 비해 좀 더 풍부해진 뭔가를 느끼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어릴 때는 사람들에게 어떤 큰 울림을 주고 싶다, 인생을 바꿀 만한 곡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한 분이라도 더 이 앨범을 듣고, 제가 담아둔 다양한 감정 중 자신과 맞닿는 곡을 한 곡이라도 찾으면 좋겠다는, 그런 음악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앨범이 될 수 있다면 만족해요. ‘이 노래, 제 플레이리스트 담고 갑니다’ 같은 반응이 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그게 타이틀곡이 아니라 수록곡이면 좀 더 기쁠지도요.
제 플레이리스트에는 1집 수록곡 “365”가 있어요
그러니까요! 이런 말이 저는 진짜 정말 너무 기뻐요. 이 곡 잘 듣고 있다는 말만큼 기쁜 게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