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1980년대의 여자들, 그리고 음악. ‘애마’ 작곡가 김지혜를 만나다 

2025.08.28 | by Lee Maroo
@NetflixKorea

지난 8월 22일 넷플릭스를 통해 총 6부작으로 공개된 ‘애마’는 실제 1980년대 한국을 강타했던 에로영화 ‘애마부인’(1982)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이른바3S(Screen, Sports, Sex) 정책이 실시되고 언뜻 자유로워지는 듯 보였으나 사실은 어김없이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었던 80년대 군부 정권 시대, 화려한 스포트라이프 뒤에 가려진 현실에 덤비는 톱스타 희란(이하늬)와 신인 배우 주애(방효린)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인간 미장센’이 되며 1980년대 탑 여배우의 아우라를 스타일은 물론 말투에서까지 완벽하게 구현한 이하늬를 비롯해 당대의 많은 것이 재현되는 이 새로운 시리즈물에서 중간중간 귀를 사로잡는 것이 있다면 그 시절의 음악이다. 나이트 클럽에서 등장하는 나미의 “영원한 친구”, 촬영을 위해 활발하게 스태프들이 모여드는 장면에서 펼쳐지는 현숙의 “정말로”, 비장한 순간에 울려 펴지는 윤시내의 “열애”…. 

‘천하장사 마돈나’(2006)을 마치고 바로 시놉시스를 쓴 작품이었지만 영화의 러닝 타임에는 담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기어코 감독의 첫 시리즈물 데뷔작이 된 ‘애마’는 결국 가상의 이야기다. 이하늬와 함께한 감독의 전작 ‘유령(2023)’이 일제강점기라는 현실에서 소재를 가져오되 이 이야기가 완벽한 가상이라는 것을 명백히 깨닫게 하는 장면을 삽입했듯, ‘애마’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시상식 장소 앞, 안기부 요원에 쫓기는 희란을 말을 타고 광화문 대로에 등장한 주애가 구출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동시에 두 배우가 서로를 꼭 껴안고 도로를 주행하는 이 장면은 이 시리즈물에서 가장 상징적이며, 현실보다는 비현실에 가깝더라도 세상을 향해 펀치를 날리려는 두 여자의 연대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태고 싶은 마음을 들게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대에 기꺼이 저항하고자 했던 여자들(여공들의 이야기도 주변부에 등장한다)의 서사에 다방면의 멋진 여성들 또한 힘을 보탰다. 음악감독 달파란과 꾸준히 작업해온 경험을 토대로, 이 여정에 함께 한 김지혜 음악감독이 빌보드코리아의 질문에 답을 보내왔다. 

재즈 피아노 전공자로 작곡의 길에 들어서게 된 음악감독이자 작곡가 김지혜 @eyhijihye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음악감독이자 작곡가 김지혜다. 재즈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 무대에서 이어가던 즉흥 연주가 어느 순간 즉흥 작곡으로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작곡에 흥미를 갖게 된 게 돌이켜보면 시작이었다. 영화 ‘백두산’(2019), ‘모가디슈’(2021) 등여러 작품에서 음악조감독으로 경험을 쌓았고, ‘핸섬가이즈’(2024)로 상업영화 음악감독에 데뷔했다. ‘애마’ 이전에는 ‘눈이 부시게(2019)’ 등 여러 시리즈물에 참여했으며, 게임 ‘로드 오브 히어로즈’ OST와 포레스텔라와의 협업 등 장르와 무대를 넘나들며 작업해오고 있다.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좋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에는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

이번 작품의 음악 감독인 달파란 감독님과 예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고(故) 방준석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며 처음 뵙게 됐고, 2022년 방 감독님이 떠나신 뒤에는 영화 ‘원더랜드’(2024)를 함께 마무리했다. 이후에도  ‘로비’(2025), ‘소주전쟁’(2025) 등에서 같이 작업을 이어가던 중, 감독님께서  ‘애마’에 옛 가요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그 곡들을 만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NetflixKorea

‘애마’는 “벗기려고만 하는 시대, 화끈하게 뒤집는다”는 캐치 프레이즈처럼 1980년대 충무로 두 여성 배우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 만큼 여성 음악감독이 작품에 함께했다는 것이 각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달파란 감독님을 제외하고 ‘애마’와 함께 한 네 명의 작곡가(김지혜, 이지향, 정나현, 허준혁) 중 나를 포함 세 명이 여성 음악가였다. ‘로비’ ‘소주전쟁’ 때도 함께 작업했기에 이번 작업 또한 자연스러웠는데 나현 감독님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수반되는 뿌듯함을 즐기는 모습이 멋있다. 지향 감독님과는 영화 ‘신과 함께’ 작업 당시 처음 만났다. 당시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는데 둘 다 묵묵히 일하는 성격이라 서로에 대한 호감이 생겼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는데 여전히 과정의 어려움보다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더 커졌다. 80년대 음악을 많이 만들어야 했는데 지향 감독님의 이해도 높은 가창에 큰 도움을 받았다. ‘애마’에서 나의 뮤즈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애마’에 여성 작곡가들이 많이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으로서’ 라기보다는 함께 한 창작자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셋이 함께 공동 음악감독으로 다른 공포영화를 준비중인데 지금까지 셋이 쌓아온 합에 힘입어 멋진 작품이 탄생할 것 같다. 

창작곡 “Shall We Dance”의 가사 “발끝에 리듬을 맡긴 채 나는 그 속을 달려가 더 멀리” 가사를 보면 주애(방효린)가 멋지게 탭댄스를 추는 장면이 연상된다. 어떤 장면을 상상하면서 만들었나 

처음 가사 없는 버전을 들은 이해영 감독님이 ‘씩씩한 여자, 다 잊어버리고 떠나는 여자’라는 느낌의 가사를 부탁하셨다. 그 요청을 반영한 곡이 후반부에 등장하는 "Shall We Dance”다. 자아를 회복한 여성이 씩씩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주애의 당돌함, 그리고 춤으로 표현되는 자신감을 음악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반대로 전반부에 등장하는 "오 나의 그대여”는 전형적이라고 여겨지는 옛날 여성상을 담은 수동적인 가사로 썼다. 의상실 장면에 등장하는 곡인데 ' 하늘에 닿는다면 작은 비를 내려’라는 가사처럼 직접적으로고백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의도한  아니었지만주체적으로 거듭나는 여성상이 이어지는 흐름이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보며  역시 뿌듯했다.

@NetflixKorea

영화 음악감독 작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을 꼽아본다면

영화 음악감독의 매력은 음악이 없는 영화에 음악을 더하거나 덜면서 작품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다. 또 어떤 톤의 음악을 얹느냐에 따라 영화의 색깔이 달라지는 걸 체감할 때도 큰 즐거움을 느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첫 상업영화였던 ‘핸섬가이즈’다. 오컬트, 코믹, 버디, 미스터리 등 여러 장르가 섞여 있어 신인 음악감독으로서도전의식을 불태울 수 있었던 작품이다. 당시 90년대 팝 스타일을 접목했는데, 어린 시절 빌보드 차트에서 들었던히트곡들을 내가 직접 만든다고 상상하며 곡을 썼던 기억이 난다.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모가디슈’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소말리아 내전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현지 음악을 공부하며 다양한 전통 타악기를 활용해 그 색을음악에 녹여냈다. ‘애마’의 80년대 한국 음악, ‘핸섬가이즈’의 90년대 팝, ‘모가디슈’의 소말리아 음악처럼, 영화마다 전혀 다른 시대와 문화를 담아내야 한다는 점이 영화 음악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애마’에는 나미 “영원한 친구” 이은하 “아리송해”, 윤시내 “열애” 패티김 “못잊어” 현숙 “정말로” 등 그 시절 디바들의 곡이 다수 등장한다. 가장 곡이 와닿았던 장면은

 4화 엔딩에 나온 패티김의 “못잊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희란(이하늬)와 구중호(진선규) 두 인물이 격렬하게 맞붙는장면에 흐르는데,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와 노래가 맞물리면서 보는 제 입장에서도 속이 다 시원했다. 특히 “못잊어”라는 곡이 그 장면 속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주어 인상 깊었다.

‘애마’는 산업의 부당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국의 많은 문화 산업이 커지고 있지만, 개선되길 바라는 점이 또 있다면   

많은 문화 산업이 커지고 있음에도  영화는 코비드-19 이후 아직도 많이 불안한 것 같다. 제작 편수도 줄고 관객 수도 줄어드는걸 보면서 아쉬움이 크다. 영화가 활발히 만들어져야 그 안에서 다채로운 시도가 나올 수 있고, 그래야 관객들도 극장에 갈이유와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활발하게 영화들이 제작되고 관객들도 더 많이 찾는 환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1980년대 한국 가요 넘버는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 곡이었는데, 어느날 앨범 자켓 속 이은하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항적인 표정에 스모키 메이크업, 펑키한 웨이브 헤어와 청바지, 빈티지한 가죽 재킷까지 정말 세련되고 멋진 모습이었다. 그냥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그 앨범 아트를보고 괜히 제가 좋아했던 취향까지 세련되어진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는 곡이 됐다(웃음).

1986년에 발매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1994년 "더 골든 베스트" 앨범에도 수록됐다

라포엠, 포레스텔라 같은 크로스오버 뮤지션들과도 꾸준히 작업해 오고 있다. 이 장르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느끼나? K팝처럼 해외 팬 유입등 확장성이 가능하다고 보는지

사실 모든 음악이 크로스오버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크로스오버 장르의 음악들도 결국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는 ‘가요’나 ‘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라고 하면 디즈니나 지브리처럼 오케스트레이션이 가득한 음악을 떠올리지만, 사실 요즘 영화에서는 그런 음악만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톤의 음악들이 훨씬 많이 쓰이고 있는 것처럼. 라포엠, 포레스텔라와의 작업은 오히려 내가 어린 시절 보아왔던 ‘영화음악적인 어법’을 마음껏 펼칠 수 있어 즐겁다. 클래식 보컬과 만났을 때 오케스트레이션이 주는 웅장한 힘이 환상의 호흡을 만든다고 할까. 특히 최근 포레스텔라와의 작업에서는 거대한 서사의 사랑 이야기를 담기 위해 영화음악적인 어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오케스트레이션을 과감하게 쓰며 스스로 해소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미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음악들이 일시적인 트렌드보다 더 오랜 생명력을 가졌다고 느낀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알고 있는 가곡들처럼 해외에서도 긍정적으로 자리할 것이라고 믿음이 있다.

김지혜의 플레이리스트에 가장 최근 추가된 곡은 무엇인가? 그리고 가장 오래 살아남은 곡은

최근 플레이리스트에 추가된 곡은 Maroon 5와 리사가 함께한 “Priceless”다.  고등학생 때는 Maroon 5음악에 빠져있었고, 20대 때는 영화 ‘비긴 어게인’(2013) OST인 “Lost in Stars”를 즐겨 들었다. 최근 블랙핑크 음악을 즐겨 듣고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이 만나서 작업한 걸 보니 혼자 괜히 반갑더라. 요원들의 이야기를 두 사람이 직접 연기하는 뮤직비디오도 흥미로워서 요즘 자주 듣고 있다. 가장 작업해 보고 싶은 K팝 아티스트는 로제. 로제 특유의 ‘쿨’한 무드를 정말 좋아한다. 특히 팝스타들의 무드를 연상케 하는 “Toxic Till the End”는 처음 발매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플레이리스트에 남아있다. 그 외 가장 오래 살아남은 곡을 하나 꼽자면 Mamas Gun의 “I Need a Win”! 힘들 때마다 들으면서 큰 위로를 받아왔던 곡이라 지금도 담겨져 있다. 

?si=s4HN1dTWoqjEjSV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