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와 빌보드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어요” ‘Golden’의 안무가 조나인
2025.08.29 | by Kwon Saebom‘몸치’ 소리를 듣던 소녀가 빌보드 HOT100 1위를 찍은 안무를 만들기까지. 치열하게 변화하는 K팝 신에서 승부욕을 원동력 삼아 달려온 2003년생 조나인. 비로소 영광의 순간을 맞이한 그녀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골든’, 그리고 안무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오늘의 K팝에 대해 이야기했다.

2003년생 댄서 겸 안무가 조나인. 친구를 따라 처음 간 댄스 학원에서 ‘몸치’라는 평가를 받던 소녀는 부단한 노력 끝에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실용무용과에 합격하기 이른다. 하지만 곧 세계적인 댄스 크루 저스트절크에 입단하면서 과감히 학교를 자퇴하고 프로의 세계에 입문한다. 불과 17살, 2020년도의 일이다. 이어 한국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은 댄스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스핀오프격인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이하 ‘스걸파’)에서 리더로 활약하며 크루 ‘턴즈’를 우승으로 이끈 그녀. 대한민국 최고의 여고생 댄스 크루원으로 인정받은 그 해 보그 코리아가 선정한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24인’에도 조나인의 이름이 올랐다.
이처럼 일찍부터 댄서로서 남다른 커리어를 쌓아온 그녀는 뛰어난 댄서이자 동시에 유능한 안무가다. ‘스걸파’ 참여 이전부터 엔믹스 ‘占 (TANK)’ 안무 제작에 참여하며 두각을 드러낸 조나인은 2022년 한 해 동안만 잇지 ‘‘SNEAKERS’ 외 2곡, 엔믹스 ‘DICE’, 트와이스 ‘Talk that Talk’, 스테이씨 ‘I LIKE IT’ 등 K팝을 대표하는 걸그룹들의 안무를 다수 제작했다. 최근에는 아일릿, 하츠투하츠, 베이비몬스터, 세이바이네임 등 데뷔 직후 주목받은 신인 걸그룹들의 퍼포먼스 역시 그녀의 손을 거쳤다. 또한 샤이니 키 ‘Hunter’, NCT 텐 ‘BAMBOLA’ 같은 퍼포먼스형 아티스트들의 콘셉추얼한 안무까지 작업했다. “지난 3년 동안 만든 안무만 150개가 넘어요.” 끊임없이 창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묻자 그녀는 ‘재능’이 아닌 ‘승부욕’을 꼽는다. 학창 시절 배구 선수의 길을 고민할 만큼 강했던 경쟁심은, 실력 있는 창작자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K팝 시장에서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또한 조나인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부터 BTS 정국의 팬임을 자처할 만큼 스스로도 열성적인 K팝 리스너다. ‘스걸파’ 방영 당시 애청자였던 정국이 직접 그녀의 유튜브 채널명을 ‘Have A Good NAIN’으로 지어준 경험은 활동을 이어가는 데 큰 힘이 됐다. 또한 그녀는 요즘의 걸그룹 멤버들에게서도 자주 영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소속사에서도 과거보다 훨씬 더 난이도 높은 안무를 요구하고, 멤버들 스스로도 댄서처럼 춤을 정말 잘 추는 경우가 많아져서 저에게도 좋은 자극이 돼요.”
그리고 올해, 그간 탄탄히 쌓아온 조나인의 커리어는 또 한 번 크게 도약했다. 그녀가 두 곡의 안무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넷플릭스 공개와 동시에 전 세계적인 폭발적 사랑을 얻은 것. K타이거즈, 더블랙레이블 리정, 잼리퍼블릭의 조나인까지 세 팀이 안무 제작에 참여했고, 그 중에서 그녀는 ‘Golden’과 ‘Take Down’을 맡았다. 특히 ‘Golden’은 OST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으며 최근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HOT 100에서 1위를 차지한 만큼 K팝 전체 역사에서도 그야말로 큰 획을 갖게 됐다. “댄서에게 빌보드는 사실 거리가 먼 차트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만든 안무가 빌보드에서 그런 성과를 거뒀다는 게 아직도 얼떨떨하고, 동시에 신기하면서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죠.”
숨 가쁘게 달려온 끝에 영광의 순간을 맞이한 조나인.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그녀를 통해 우리는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와, 그 너머에서 젊은 창작자들의 빛나는 헌신과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은 그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프로젝트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요?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잼리퍼블릭에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했고, 그 과정에서 소속사 대표님께서 저를 추천해주셨어요. 제 커리어를 믿고 맡겨주신 것 같아요 사실 초반엔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아 여러모로 궁금함이 컸는데, 궁금했는데, 애니메이션이라면 오히려 제가 상상한 안무를 더 넓게 펼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기쁘게 합류했습니다.
‘Golden’을 처음 들었을 때 받았던 느낌은
무엇보다 먼저 크고 웅장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대형 공연장에서 울려 퍼지는 그림이 저절로 그려질 정도로요.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만들어야 하는 부분은 30초 가량이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안무를 짜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요. 안무가에게는 그 부분이 창작에 몰입하는데 정말 중요한 요소라라. 그러다 보니 작업 시간도 상대적으로 상당히 짧았죠. 음악이 좋았던 만큼요.
안무를 짜면서 어떤 부분을 강조하여 창작하려고 했나요?
헌트릭스 멤버 세 명이 큰 공연장에서 무대에 선다는 가이드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감동을 줄 수 있을지를 가장 먼저 고민했어요. 그래서 ‘Golden’ 안무는 일반적인 K팝 퍼포먼스보다 더 극적이고 직관적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짰습니다. 또 애니메이션을 통해 구현되는 만큼 동작을 더 크고 시원하게 뻗어 나가도록 했고, 화면에 잘 담기도록 표정이나 손끝 같은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죠!
‘Golden’의 30초 안무 중에서도 스스로가 이 부분은 정말 잘했다 싶은 포인트가 있다면요?
저는 인트로 파트를 꼽고 싶어요. 멤버 전원이 같은 자리에 서서 동시에 시작하는게 케이팝의 일반적인 공식이거든요, 그런데 ‘Golden’은 처음 루미 혼자무대를 여는 게 포인트였다고 생각해요.스토리 속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주변에서도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저 개인적으로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웃음).
모션 캡처 촬영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고요
촬영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났다는 점이요.(웃음)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 관계자분들이 세팅을 하고, 출연진을 위해 커피를 사러 나갔는데 그 사이 촬영이 끝나버렸거든요. 제가 성격이 좀 준비를 완벽하게 하려는 편이라. 스스로가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만큼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하고 해요.
‘Golden’이 결국 Billboard HOT 100 1위에 올랐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아요. ‘Golden’ 안무를 만들던 당시 연습실의 공기까지 생생하게 기억나거든요. 그때는 그저 제가 하고 싶은 걸 재미있게 해보자는 마음뿐이었는데, 그 결과물이 빌보드 1위까지 이어졌다는 게 놀랍습니다. 즐기면서 만든 작업이 결국 사람들에게도 통한다는 걸 이번 기회로 증명 받은 셈이죠.
전 세계적으로 K팝이 어느 때보다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K팝은 여러 사람이 함께 공감하며 즐기기에 참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멤버가 무대에서 함께 퍼포먼스를 펼치고, 또 팬들끼리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잖아요. 그렇게 다수가 함께 어우러지며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큰 매력으로 작용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깊이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조나인의 춤이라 했을 때 특정 스타일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이 생각은 여전히 동일한가요?
네, 여전히 그렇습니다. ‘조나인은 이런 스타일을 잘한다’는 인식도 좋지만, 저는 그보다 ‘조나인이 이 음악을 맡으면 어떻게 풀어낼까’를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거든요.
안무가로서 창작에 임하는 본인만의 방식이나 철학이 있다면요?
작업 전에 해당 아티스트의 영상을 정말 많이 찾아봐요. 캐릭터를 공부하는 거죠. 어떤 자세에서 힘을 잘 쓰는지, 어떤 포즈가 잘 어울리는지, 어떤 앵글에서 가장 빛나는지를 먼저 캐치하고 나서 안무를 입히면 훨씬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고, 아티스트 본인도 만족하더라고요. 저는 스스로를 ‘무대를 꾸미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카메라 앵글이나 조명 위치 같은 요소까지 고려합니다. 예를 들면 탑뷰로 찍었을 때 단순한 동작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보일지를 고민하는 식이죠.
노력형이라니, 그간 쌓아온 커리어를 본다면 너무 겸손한 발언 같은데요!
이 분야에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저는 진짜 머리를 싸매고 노력해야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쪽에 가깝죠. 그래서 창작에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저는 노력형에 더 가깝죠. 다만 춤은 달라요. 그냥 추는 것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 워낙 크거든요. 안무는 그와는 또 다르게, 완성했을 때 오는 성취감이 있지만요!
그렇다면 노력 외에 지금의 커리어를 가능하게 한 본인만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저는 승부욕이 강한 편이에요. 원래 운동, 특히 배구 쪽으로 진로를 고민할 정도였는데, 뭘 하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죠. 그래서 주변에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보다 더 잘해야지’ 하는 선의의 경쟁심이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아요. 저스트절크 때도, 스걸파 때도 그 마음이 그대로 이어졌고요. 요즘은 뛰어난 안무 제작자들이 정말 많잖아요. 예전 팀 활동할 때도 늘 실력 있는 동료 들이 곁에 있어서, 제 기준도 자연스럽게 더 높아질 수 있었습니다.
조나인이 생각하는 케이팝 안무만의 특징은
기억에 남는 포인트가 있다는 거예요. 요즘은 특히 챌린지로 이어질 수 있는 포인트 안무들이 많이 만들어지죠. 다만 저는 무조건 챌린지만을 고려한 안무는 지양하려는 편이에요.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면서도 쉽게 기억되고, 또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난이도만 높이거나 포인트만 부각하기보다는 음악을 조금 더 의식한 안무를 지향해요.
최근 소속사에서 요청하는 안무 트렌드는 어떻게 바뀌고 있나요?
안무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제가 어릴 때 봤던 걸그룹 이미지와 비교한다면 훨씬 와일드해졌죠. 소속사에서도 지금은 훨씬 더 와일드하고, 테크닉적으로도 까다로운 동작을 많이 요구해요. 또 멤버들도 정말 댄서처럼 춤을 잘 추는 분들이 많아졌고요. 예를 들어 하츠투하츠의 주은 같은 친구는 프로 댄서라고 해도 될 만큼 잘 추더라고요. 그런 실력이 무대에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런 변화가 개인적으로도 꽤 인상 깊습니다.
지난 3년 동안 150개가 넘는 안무를 만들고, 댄서로서 무대에도 서고 있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도 사람인지라 창작의 고통을 느낄 때가 있고, 일하면서 스트레스도 받아요. 하지만 완성된 작업물을 보면서 얻는 성취감이 그걸 이겨내게 해주죠. 또 저에게는 스걸파 때부터 함께한 든든한 크루 ‘턴즈’가 있으니깐요. 안무 창작으로 머리를 쥐어짜다가도, 팀원들과 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풀곤 해요. 그렇게 얻은 에너지가 다시 창작의 힘으로 이어집니다. 여러모로 주변에서 얻는 동력이 크죠.
스스로 만든 최고의 안무 중 하나로 엔믹스의 ‘占 (TANK)’를 꼽았죠. 어떤 점에서 특별했나요?
엔믹스는 단순히 걸그룹하면 떠오르는 예쁜 안무만 소화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와일드하고 도전적인 앵글까지 잘 표현해내는 팀이에요. ‘占 (TANK)’라는 곡은 음악 자체가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제가 그런 안무를 던졌을 때도 자기 옷처럼 완벽히 소화해내더라고요. 또 엔믹스 음악에는 믹스팝 특유의 분위기 전환이 있잖아요. 그래서 한 무대 안에서도 여러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안무를 구성할 수 있었고, 멤버들이 그 부분을 훨씬 잘 살려줬습니다. 안무가로서 쉽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정말 재미있었던 작업이었어요.
K팝 신을 넘어, 안무로 협업해보고 싶은 팝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레이디 가가요. 최근 무대에서 선보인 ‘Abracadabra’ 공연 영상을 보고 다시 한 번 큰 울림을 받았죠. 그 무대를 본 뒤 꼭 그녀를 위해 안무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피어올랐습니다. 연습 영상, 무대 영상, 심지어 발라드를 부르는 모습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모든 순간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늘 저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라는 사람을 확장해 나가고 싶나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둔 건 없어요. 다만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늘 있습니다. 이번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걸 보면서 정말 큰 보람을 느꼈거든요. 앞으로도 제 작업물과 제가 하는 일 자체가 더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방향을 묻는다면, 위로! 라고 답하고 싶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