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배드 버니, 푸에르토리코를 전세계에 알리다. 빌보드 13개 에디션 커버를 장식한 남자 

2025.10.08 | by Billboard Korea

배드 버니는 지금 최고의 슈퍼스타 중 한 명이다. 7월부터 9월까지 이어진 산 후안에서 31회에 걸친 공연의 여정을 마치고, 내년 2월 개최될 미국 최대 이벤트, 슈퍼볼 하프타임쇼 헤드라이너 자리를 배드 버니가 차지했다는 뉴스가 막 전해진 지금, 배드 버니가 그의 동료 뮤지션 레지덴테와 나눈 대화. 

배드 버니의 이번 빌보드 커버 프로젝트는 각국의 언어로 표기한 13개국 버전으로 제작됐다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 후안(San Juan). 이 도시를 대표하는 공연장 콜리세오(Coliseo de Puerto Rico José Miguel Agrelot)에서 무려 31회 전석 매진을 기록한 장기 공연(Residency)을 딱 한 회 남겨둔 상황에서 배드 버니(Bad Bunny)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매 분, 매 초를 귀하게 여기세요” 1만5천 명의 관중 앞에서 말을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을 꿈꾸며 푸에르토리코를 떠난 모두에게, 그리고 여전히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전합니다. 와, 정말 떠나고 싶지 않아요!” 

No Me Quiero Ir de Aquí(난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배드 버니가 공연에서 건넨 말이자 이번 공연명이기도 한 이 표현은 즉각적으로 그의 앨범  DeBÍ TiRAR Más FOToS (더 많은 사진을 찍었어야 했어)의 정서와 연결된다. 고국인 푸에르토리코를 향한 연서와도 같은 이 앨범 뒷면에는 ‘전 세계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에게’라고 적혀 있다. 

푸에르토리코의 중요한 휴일인 ‘주현절(Three Kings Day)’을 하루 앞둔 1월 5일, 총 17곡이 수록된  6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하고 올해 7월 11일부터 30회 넘는 레지던시 공연을 이어온 지금 “No me quiero ir de aquí”는 푸에르토리코 사람들 뿐 아니라 배드 버니의 자생적인 음악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전세계 다문화 디아스포라에게도 자부심 그 자체의 구호가 됐다. 

앨범 발매로부터  9개월 남짓한 시간이 흐른 지금, 배드 버니의 6집 DeBÍ TiRAR Más FOToS(이하 DTMF)가 거둔 성취는 놀랍다. 푸에르토리코의 전통 음악 장르인 플레나(Plena)와 살사에 집중한 이 앨범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는 아티스트 본인조차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4주간 1위를 거머쥐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들을 통합하고, 사람들을 춤추게 하며, 사랑과 축하를 불러일으키는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섬으로 귀결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과 복잡한 정치경제적 문제들이 공존하는 곳, 그리고 배드 버니가 ‘언제나 돌아오는 곳(Always return to)’이라고 일컫는 곳, 바로 배드 버니의 고향인 푸에르토 리코다.  명성이 커짐과 함께, 베니토 안토니오 마르티네즈 오카시오(Benito Antonio Martínez Ocasio)라는 이름의 이 1994년생 남성은 푸에르토 리코 역사상 가장 열정적이며 영향력 큰 홍보대사가 됐다. 내년 2월, 그는 뉴 올랜스에서 열리는 슈퍼볼 LX 하프타임쇼에 헤드라이너로 출격할 것이다. 

9월 3일 공연장에서 촬영한 배드 버니. 스웨터는 Av vattev, 반바지는 빈티지 Ralph Lauren, 슈즈는 Adidas. 

이제 플레나와 살사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드 버니의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아흔 살 된 푸에르토 리코 배우의 이름이 하코보 모랄(Jacobo Morale)이라는 것 까지도 알게된 수백 수 천 명의 팬들이 7월부터 9월까지 이어진 레지던시 공연을 보기 위해 푸에르토 리코로 날아왔다.  공연장에 모인 관객들은 거대한 산과 이제는 상징이 된 ‘카시타(작은 집)’를 배경으로 펼쳐진 파티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 ‘카시타’는 푸에르토리코의 전통 주택과 닮게 설계되어, 공연장 내부에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공연 내내 르 본 제임스(LeBron James)부터 리키 마틴(Ricky Martin)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게스트로 함께 올랐다. 레지덴테(Residente)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레네 페레스 호글라스(René Pérez Joglar)도 그 중 한 명이다.

날카로운 가사, 사회적 발언, 그리고 고향 푸에르토리코의 정치에 대한 열정으로 잘 알려진 이 반항적인 래퍼는 배드 버니의 내면에서 자신과 비슷한, 그러나 한결 부드러운 기질을 발견했다. 산 후안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했던 2017년 12월 이후 두 사람은 빠르게 친구가 됐고, 2019년에는 싱글 “Bellacoso”와“Afilando los Cuchillos”를 발표하며 음악적으로 함께하기도 했다. 특히 두 번째 싱글은 당시 푸에르토리코의 주지사(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이다)였던 리키 로셀로(Ricky Rosselló)와 두 사람이 갑작스러운 만남을 가진 이후 발매된 반정부적 곡이다. 로셀로는 그 해 결국 사임했지만, 배드 버니와 레지덴테 두 사람의 우정은 남았다. 게스트 무대를 마친 이후, 레지덴테는 친구를 인터뷰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음악과 영화, 추억, 그리고 푸에르토 리코인으로서 자긍심까지, 대화의 범주는 넓었다. 

수트와 타이, 밸트는 ERL, 슈즈는 Marni.


너를 인터뷰할 수 있다니 영광인 걸. 첫 번째로, 이번 공연에 대한 창작 과정을 듣고 싶어. 산과 카시타, 봉황목(Flamboyant Tree) 같은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비롯한 거야? 

내 작업 방식은 다소 어수선한 편이지만 내게는 잘 맞아. 하나의 아이디어가 시작되면, 차츰 다른 것들이 떠오르고 결국에는 모든 게 딱 맞아 떨어지지. 이번 쇼에서 내가 맨 처음 떠올린 것은 산이었어. 공연장에 산을 세워두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지. 마치 푸에르토리코의 중심부를 떼서 옮겨둔 것처럼 말이야. 보통 콘서트라는 건 스크린이 필요하기 마련이니까, 처음에는 산 위에 전광판을 세우려고 했어. 자연이 교란되는 풍경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지. 그런데 공연팀이 봉황목이랑 바나나 나무 같은 아이디어를 가져온 거야. 이처럼 사람들이 내가 생각 못한 아이디어를 가져올 때 너무 좋아. 카시타에 대한 발상은 나중에 떠올랐어. VIP 구역이라는 게 어떨 때는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알지? 난 그 구역이 공연과 어우러지면서도 재미있고 쿨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VIP 석은 스테이지 B, 앨범 영상 속 하코보의 집처럼 꾸몄지. 주방과 소파, 모든 걸 가져다 놓으면서 마치 뒷마당 파티(Party de Marquesina)를 여는 공간처럼 된 거야. 관객들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어울리며 공연의 일부가 될 수 있었고.

그 카시타가 네가 꿈꿔온 뒷마당 파티라면, 거기 와줬으면 했는데 초대 못 한 누군가가 있어?

난 크리스마스, 생일, 가족 행사를 항상 뒷마당에서 파티처럼 치르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거든. 그럴 때 집 분위기가 딱 티토(Tito;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전설적인 복서 Félix Trinidad의 애칭)가 그 카시타에 왔을 때 같았어. 아버지, 아이들, 형제들까지, 그야말로 온 가족을 다 데려왔더라고. 덕분에 실제 가족 모임에서 온 가족이 축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  거기 또 누가 왔음 좋았을 것 같냐고? 일단 테고 칼데론(Tego Calderón; 푸에르토리코 래퍼)! 의심할 여지가 없지.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돼. 그냥 즐기면서 거기 있어주면 충분해. 그리고 드레이크(Drake)가 왔다면 끝내줬겠지. 솔직히 카시타에 누가 오는지 몰랐다가 당일에 깜짝 놀랄 때도 있었어. 모두가 이게 공연이라는 걸 잊고 즐기는 것 같아서 행복했고. 

DTMF 수록곡인  “Lo Que Pasó en Hawaii(하와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무대가 끝났을 때 스크린에 “No me quiero ir de aquí” 문구가 떠오르잖아.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내 앨범의 긴 문구는 언제나 의미가 있어. “No me quiero ir de aquí”는 푸에르토리코, 무대, 그리고 집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한 표현이야. 미국에 거주중인 라티노는 물론이고 자신, 혹은 부모가 조국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이 다 이 공연에 오잖아. 그래서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 심지어 자기가 원한 적 없는데도 그래야만 했던 사람들과 공명하는 것 같아.  

떠나는 일과 돌아오는 일이 이 컨셉 안에서 한데 어우러지는 걸 보는 게 정말 흥미로워. 사실 떠나는 것에서만 말하는 건 아니잖아. 방랑과 성장, 그리고 고향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돌아온 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 

아주 정확해. 성장과 탐험을 위해 떠나는 것과 선택권 없이 떠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까. 

이건 “달에 있는 푸에르토리코인(Boricua en la Luna; 고향을 떠난 그리움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푸에르토리코 시에서 유래한 말. 보리쿠아는 푸에르토리코인을 뜻한다)” 표현과 이어지기도 해.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계속 고향에 있잖아. 어디에 있든 ‘Arroz con habichuelas(삶은 콩을 토마토 소스에 곁들여 밥과 먹는 푸에르토리코 음식)’을 맛보고, 푸에르토리코의 전통을 지키면서 말이지. 

맞아. 공연 영상에서 하코보도 말하잖아. “우리가 어디에 있든, 이게 우리의 집이다. 내가 어디로 향하든, 나는 언제나 푸에르토리코인일 것이다”라고. 바로 그 지점에서 “No me quiero ir de aquí”의 심오한 의미가 만나기 시작하는 거야. 

다들 네 이번 장기공연이 얼마나 푸에르토리코의 경기에 도움이 됐는지 말해. 금액을 떠나서 네가 만들어낸 무형의 가치는 추산할 수 없을 정도지. 네가 생각하는 이번 공연이 이 섬의 정체성에 미친 문화적 영향력은 뭐야? 

이건 누군가 돈으로 사거나 훔칠 수 없는 거야. 나에게 가장 충만함을 주는 일이기도 하고. 난 항상 진심으로 일하고, 문화적인 영향력은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 같아. 아이들부터 중년, 때로는 80대, 90대에 접어든 사람들까지 온갖 연령대의 사람들을 공연장에서 만나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야. 그 중 누군가는 한껏 차려입고 젊어진 기분을 내기도 하고, 푸에르토리코인이라는 정체성을 자랑스러워 하기도 하지. 그게 이번 레지던시 공연이 이 섬에 뿌린 씨앗 같은 거라고 생각해. 여기 사는 사람이든, 외국에서 온 사람이든, 그 사람들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그 어떤 것이지.

담요는 The elder Statesman

좋아, 주제를 한 번 바꿔보자. 네가 DTMF 앨범을 공개했을 때, 난 순간들을 기록해두지 않은 것이 후회됐어.

나도 마찬가지야. 난 원래도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 아니지만 그 의미가 100퍼센트 문자 그대로인 건 아니야. 이 말 자체는 현재를 살라는 뜻이었어. 그래서 공연 중에도 사람들한테 폰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마음으로 찍어달라고 말한 거야. 그거야말로 진짜 중요한 거잖아.  

어떤 순간들은 사진으로 담는 것보다 그냥 기억할 때 더 위대하고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하지 

순간을 담는 것과 그 순간을 사는 것에는 균형이 필요해. 한 번은 팬과 교감하면서 그녀에게 키스를 보냈는데 정작 그 사람은 폰을 꺼내려고 하다가 보지 못했어. 그 순간을 놓친 거지. 그 장면을 본 누군가가 그녀에게 사실을 전해주면 좋겠네!

이번에 길베르토 산타 로사(Gilberto Santa Rosa), 그리고 파나마 출신인 루벤 블레이드(Rubén Blades)와도 같이 노래했잖아. 어떤 살사 아티스트와 또 무대를 하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가장 ‘전설적인’ 살사 뮤지션을 꼽는다면? 

와, 빅토르 마뉴엘(Víctor Manuelle)과 했다면 너무 좋았을 거야. 사실 연락을 했는데 그의 일정이 완전히 꽉 차 있어서 성사되지 못했어. 내가 트랩 장르로 막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 협업했던 첫 살사 뮤지션이 빅토르거든. 그때 난 막 시작하는 상태였는데 날 믿어준 게 당시 내게는 정말 큰 힘이됐어. 생사와 관계없이 ‘최애’를 꼽아야 한다면 헥토르 라보에(Héctor Lavoe), 프랭키 루이즈(Frankie Ruiz), 체오 펠리치아노(Cheo Feliciano), 이스마엘 리베라(Ismael Rivera), 셀리아 크루즈(Celia Cruz), 티토 로자스(Tito Rojas)… 아, 그리고 티토 로드리게즈(Tito Rodríguez)도! 그의 목소리를 정말 좋아하거든. 

그리고 앨범과 이번 공연에 함께했던 젊은 오케스트라와는 어떻게 같이 작업하게 된 건지도 궁금해 

“Baile Inolvidable(잊을 수 없는 춤)”을 구상할 때 이걸 현실화하려면 적합한 팀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지. 난 음악을 만들 때 비밀스럽기도 하지만, 또 도전하는 걸 좋아하거든. 유명한 편곡가들에게 맡길 수도 있었지만 난 내 머릿속에 이미 존재하는 편곡을 현실로 만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어. 그때 바로 빅 제이(Jay Anthony Núñez)를 만났지. 그는 봉고와 캄파나를 연주하는데, 내 아이디어를 컴퓨터로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을 줬어. 그러다가 줄리토 가스톤(Julito Gastón)이라는 소년이 다른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오케스트라를 지위하는 틱톡 영상을 보게 됐지. 정말 에너지가 넘치더라고. 마치 젊은 로베르토 로에나(Roberto Roena; 푸에르토리코의 살사 뮤지션) 같았어. 꽤 오래전 올라온 영상이었지만 이 사람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었고, 놀랍게도 줄리토는 여전히 활동 중이었어. 그리고 연주자들을 모아왔는데 빅 제이가 추천한 사람들과 줄리토가 데려온 인물 리스트가 거의 똑같았지. 열망과 진심을 가진, 딱 내가 찾던 사람들이었던 거야!

그들과 또 정규앨범 작업을 할 계획도 있어? 

원래라면 깜짝 뉴스가 될 만한 소식이겠지만 맞아, 이 정도에서 멈출 수 없다는 건 제법 명백하지. 

재킷은 Amiri. 셔츠는 Prada. 팬츠는 Balmain. 쥬얼리는 Marvin Douglas. 

셋리스트 중에 특히 감정적이 되거나, 감정을 조절해야 했던 곡도 있을까? 

그럼. 이건 그 날이 어떤지, 그리고 내 기분 상태에 따라 다르긴 한데 “La Mudanza(이사)” 무대를 처음할 때 곡이 우리 부모님에 관한 곡이고, 관객석에 어머니가 와있다는 것을 아니까 감정이 크게 왔어. “DtMF”도 종종 그래. 특히 할아버지와 도미노를 하던 가사를 부를 때가 그렇지. “Lo Que le Pasó a Hawáii”도 마찬가지야. 정말 감성적인 곡이잖아.

이번 장기공연의 게스트 라인업은 뜻밖이었어. 예를 들어 루이스 폰시(Luis Fonsi)가 “Lo Que le Pasó a Hawáii”를 부른 것처럼 말이야. 장르가 워낙 다르잖아. 

그거야 말로 시작 단계부터의 계획이었어. 원래 배경이 어떻든 이번 공연에서는 누구나 공연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껴주길 바랐거든. 원래의 음악 취향, 정치적 의견, 그 어떤 것도 관계없이 모두를 위한 것 말이야. 게스트들이 이 경험을 돌아봤을 때 “나도 한 몫했지”라고 생각하길 바랐어. 이번 공연 전체의 기획 의도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 고향과 문화를 돌보는 거지. 모두가 환영이었어. 

완전 푸에르토리코 크리스마스 축제 같았어. 그런 따뜻함과 공동체 의식이 있었지. 

그렇지.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또 말할게. 이번 장기공연은 이전에 내가 경험했던 어떤 것과도 달라.  ‘조화(Harmony)’라는 단어가 자꾸만 떠오르거든. 봐봐, 30번이나 공연을 했는데 누군가 싸우거나 다투는 영상 하나 뜬 적 없이 모두가 행복해. 춤추고, 사랑을 표출하지. 

음악적으로도 아티스트로서도 엄청난 성장이었을 거야. 지금 정말 최전성기잖아. 창의성 면에서 어떻게 너 자신을 능가하려고 해? 

내가 이 일에서 가장 사랑하는 게 바로 그거야. ‘다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 난 더 높은 단계나 위대해지는 것에 대해 집중하지는 않아. 그냥 진심으로 뭔가를 만들고 내 삶과 이 세상, 그리고 대중들이 이게 어떤게 될 지 결정해주길 바라지.  왜, 한 번은 모든 걸 가진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침체기에 빠지게 되는지 이야기를 나눈 적 있잖아? 처음 노래를 시작했을 때 엄마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나. 내가 엄마한테 “소진될까 봐 두려워요”라고 말하니까 엄마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그러지 마. 그냥 즐겨.” 처음으로 노래가 히트했을 때 난 이번 한 번이 끝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후에 내가 거둔 성공들은 사실 정말 말이 안되는 수준이지. 그러다가 Un Verano Sin Ti(너 없는 여름) 앨범을 냈을 때 알았어. 아 이건 너무 크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라고. 난 최고가 되라고 나를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어. 기록을 깨는 일이나, 1위를 하는 것은 신경 안써. 그냥 나는 푸에르토리코를 위한 음악을 만들고 싶어. 이번 공연이 내게 상기시켜준 게 있다면 그거야. 내 비전을 믿고, 진심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것.

*이 인터뷰는  2025년 10월 4일자 빌보드에 게재됐습니다

*배드 버니의 전체 빌보드 글로벌 에디션 보러 가기

Credits

Writer Leila Cobo

Photographer Dewing Valdez

Styling Strom Pablo 

Grooming Gilberto Gonzalez 

Production Sigfredo Bellaflores and Lauri Ve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