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 패밀리'는 K팝에서 부활할 수 있을까?
2024.11.16지난 10월 4일부터 6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에서 걸그룹 2NE1의 콘서트가 열렸다. 약 10년 만이다. 이 자리에는 그들을 론칭한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를 비롯해 빅뱅 지드래곤과 대성, 블랙핑크 제니를 비롯해 한때 이 회사에 몸담았던 거미, 세븐 등도 모였다. YG엔터테인먼트의 ‘막내’이자 신인 걸그룹인 베이비몬스터는 2NE1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하며 축하 무대도 꾸몄다. YG엔터테인먼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모인 셈이다. 아울러 소위 ‘YG패밀리’라 불리며 K팝 시장을 호령했던 이들의 ‘동창회’와도 같았다.
딱 10년 전인 2014년, YG엔터테인먼트는 SM, JYP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시가총액 1위에 오른 K팝 시장 리딩 그룹이었다. 하지만 지금 YG엔터테인먼트는 하이브·SM·JYP와 비교해 회사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킬러 콘텐츠’라 불리는 그룹의 수가 부족하다. 다른 K팝 기업에 비해 신인 발굴이 더딘 탓이다. 그래서 2NE1의 재결합으로 다시금 YG엔터테인먼트가 주목받는 이 시점에 물을 수밖에 없다. 과연 YG패밀리는 돌아올 수 있을까?
양현석 프로듀서는 한국의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일원이었다. 슈퍼스타 출신인 그는 1996년 ‘현기획’이라는 이름으로 YG의 씨앗을 뿌린 후 지누션, 원타임 등의 그룹을 론칭하며 힙합 음악을 하는 가요 기획사로서 차별화를 꾀했다. 이 시기 ‘양군기획’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9년 라는 앨범을 출시한 후 2001년부터 ‘YG엔터테인먼트’라는 사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노래 잘하는 보컬리스트에 초점을 맞추며 거미, 휘성을 비롯해 4인조 여성 보컬 그룹 빅마마 등을 성공시켰다. 이 외에도 세븐, 렉시 등 퍼포먼스를 겸한 솔로 아티스트들을 두루 발굴했다.
YG엔터테인먼트는 2006년 빅뱅을 선보이며 K팝 그룹 기획사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기존 K팝 그룹이 회사의 프로듀싱에 기댄 ‘기획형 아이돌’에 그쳤던 반면 빅뱅은 리더 지드래곤이 작사, 작곡, 편곡에 참여하는 등 프로듀싱 기능을 강화하며 차별화했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등장하기 전에는 ‘빅뱅의 시대’라 할 정도로 그들의 인기는 전 세계적으로 대단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역시 힙합을 기반으로 한 걸그룹 2NE1이 등장하며 ‘원투 펀치’를 갖춘 기획사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여기에 솔로 가수 싸이가 가세했다. 2010년 YG로 이적한 싸이는 2012년 ‘강남스타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2014년에는 2NE1이 K팝 그룹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진입(61위)했다. K팝이 빌보드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증명한 K팝 기업은 YG엔터테인먼트였다.
이 시기 YG패밀리는 황금기를 누렸다. 2014년에는 위너가, 2015년에는 아이콘, 2016년에는 블랙핑크가 각각 데뷔했다. 블랙핑크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써 내려갔다. 아시아 여성 그룹 최초 미국과 영국 양대 차트를 석권(미국 ‘빌보드 200’ 1위,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1위)했고, 미국 빌보드에선 전 세계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글로벌 200’ 1, 2위를 동시에 차지했다.
2019년을 기점으로 YG엔터테인먼트의 사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일명 ‘버닝썬 게이트’가 도화선이 됐다. 빅뱅 전 멤버였던 승리가 운영에 참여했던 클럽 버닝썬에서 폭행, 성매매, 마약 같은 강력범죄가 연달아 터졌다. 빅뱅의 활동은 중단됐고, 아이콘 역시 멤버가 마약 사건에 휘말리며 결국 팀이 와해됐다. 그 불똥은 결국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에도 튀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이 시기 회사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핵심 그룹들이 일제히 타격을 입은 이 시점, YG엔터테인먼트는 블랙핑크의 힘으로 버텼다. 2023년에는 180만 명 넘게 동원한 역대 K팝 걸그룹 최대 규모 월드 투어 ‘BORN PINK’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 외에도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로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과 영국 하이드파크 공연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섰다.
하지만 YG엔터테인먼트는 재계약이라는 장벽에 부딪혔다. 블랙핑크 멤버들의 7년 계약 기간이 마무리됐고 전원과 재계약을 맺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상승한 멤버들을 기존대로 품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룹 활동만 유지하기로 결론났다. 멤버 네 명은 이미 각자의 회사를 설립하고 개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블랙핑크로 그룹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YG엔터테인먼트와 협의해야 한다.
현재 YG엔터테인먼트가 느끼는 블랙핑크의 공백은 크다. 지난해 블랙핑크의 월드 투어까지 마무리된 직후 1조 5000억 원에 육박하던 YG엔터테인먼트의 시가총액은 현재 7000억 원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하이브, SM, JYP엔터테인먼트와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YG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위기는 4세대 보이그룹, 걸그룹의 성장세도 더디다는 것이다. 2020년 데뷔한 트레저가 안정적 인기를 누리지만 SM의 NCT, JYP의 스트레이 키즈, 하이브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엔하이픈 등의 성공과 비교하면 아쉽다. ‘빅뱅의 후계자’라 이름 붙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블랙핑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해 11월 선보인 베이비몬스터도 블랙핑크의 초반 반응과 비교하면 성에 차지 않는다. 핵심 멤버라 꼽혔던 아현이 데뷔 앨범에는 참여하지 못한 것도 오점으로 꼽힌다. 이후 아현이 합류하면서 지난 4월 7인조 베이비몬스터로 다시금 시동을 걸었다. 베이비몬스터가 11월 발표하는 첫 정규 앨범은 그들의 성장 가능성을 재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인 ‘DRIP’에는 지드래곤이 작곡가로 참여했다.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노래다. 베이비몬스터가 선보일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기대해달라"면서 "지드래곤이 작곡에 힘을 보태 좋은 음악이 완성됐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YG엔터테인먼트가 새로운 그룹을 발굴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숙제는 ‘포스트 테디’를 발굴하는 것이다. 테디는 블랙핑크의 성공을 이끈 프로듀서로서 그동안 YG엔터테인먼트의 간판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는 독립 법인인 더블랙레이블을 설립하며 걸그룹 미야오를 내놨다. YG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블랙핑크의 성공을 이끌었던 테디가 이제는 베이비몬스터의 성공을 위해서 뛰어넘어야 하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된 셈이다. 이 때문에 YG엔터테인먼트는 베이비몬스터의 첫 정규 앨범에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 지드래곤 외에도 유명 프로듀서를 대거 투입할 전망이다.
K팝에서 힙합이 더 이상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빅뱅까지만 해도 ‘YG엔터테인먼트=한국의 블랙 뮤직’을 뜻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힙합 아이돌로서 전 세계를 호령했고, 현재는 스트레이 키즈가 힙합 장르를 활용하고 있다. 베이비몬스터 역시 ‘블랙핑크의 아류’는 곤란하다. 이미 (여자)아이들과 르세라핌, 에스파 등이 ‘걸 크러시’ 이미지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고 미야오와도 경쟁해야 한다. 즉, 그들만의 장르를 발굴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마냥 전망이 불투명한 것은 아니다. 내년에는 블랙핑크가 YG엔터테인먼트에서 ‘완전체’ 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K팝 퀸’의 귀환이다. 블랙핑크를 기다리던 글로벌 팬덤이 다시 결집하기 시작되면 YG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관심도도 상승한다.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가 제시한 2025년 로드맵에 따르면 내년에는 YG패밀리에 속한 아티스트들이 일제히 활동을 시작한다. 베이비몬스터 외에도 트레저가 새 앨범을 준비 중이고, 올해 연말 송민호, 강승윤이 제대하면 그룹 위너도 내년부터 재가동한다. 아시아 투어에 돌입하는 2NE1도 내년에는 새 앨범을 내놓고 어느덧 이 회사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AKMU도 컴백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무엇보다 신인 그룹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 고무적이다.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는 "가칭 ‘NEXT MONSTER’가 대기 중"이라면서 "내년에는 신인그룹을 꼭 소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비몬스터가 데뷔 1년 차임을 고려할 때 보이그룹이 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그렇게 되면 트레저 이후 5년 만에 내놓는 새 보이그룹이다.
즉 2025년은 YG엔터테인먼트의 향후 10년 간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반등하면 다시금 ‘4대 K팝 기획사‘로 발돋움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이 경쟁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한국 앨범 시장 유통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인 YG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YG 플러스도 반등 조짐을 보인다. 모회사인 YG엔터테인먼트가 아티스트와 콘텐츠 중심인 반면 YG 플러스는 엔터테인먼트 인프라·지식재산권(IP) 사업 전문기업이다. 사업 모델이 다르기 때문에 모회사의 경영이 악화되더라도 그들의 유통하는 다른 K팝 회사의 앨범이 강세를 보이면 수익을 개선할 수 있다. 즉 YG엔터테인먼트 K팝 그룹을 키워내는 주력 사업 외에도 플랫폼 사업을 통해 존립 기반을 확장해 가고 있다.
Wrote By Austin 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