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와 해외, K팝 성공의 양면성
2025.02.24에이티즈는 현재 미국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K팝 보이그룹 중 하나다. 총 다섯 번의 월드 투어를 진행한 이들은 SM, JYP, YG, HYBE의 소위 ‘빅 4’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은 최초의 빌보드 200 차트 1위 그룹이다. 2024년, 그들은 K팝 보이그룹 최초로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으며, 열한 번째 미니앨범 GOLDEN HOUR : Part.2로 두 번째 빌보드 200 차트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을 한국에서 찾아보기란 어렵다.
앨범 판매량은 놀랍다. 미니 11집은 발매 첫 주에만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국내 음원 성적은 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한국 유튜브 뮤직 핫 100 차트에서 에이티즈의 노래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 토종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 지니, 벅스, 플로의 인기 차트에서도 에이티즈의 노래는 없다. 스포티파이에서 에이티즈가 가장 많이 스트리밍되는 지역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태국 방콕, 일본 도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스트레이키즈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해 발표한 앨범 合 (HOP)으로 전 세계 그룹 최초로 빌보드 200 차트 6연속 1위를 기록하며 빌보드 역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운 그들은 2025년 글로벌 20개 지역 스타디움 콘서트를 발표하며 글로벌 인기 최전선에 나섰다. 이와 같은 인기가 한국에서는 목격되지 않는다. 스트레이 키즈의 타이틀 싱글 "Chk Chk Boom"은 한국 주요 스트리밍 차트에서 단 한 번도 1위를 기록하지 못했다. 스포티파이에 따르면, 스트레이 키즈의 주요 스트리밍 지역은 인도네시아, 일본, 칠레, 브라질, 말레이시아다.
오늘날 K팝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충성도 높은 팬덤을 기반으로 성과를 올리는 장르다. IFPI 글로벌 음악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한 작품은 세븐틴의 FML, 2위는 스트레이 키즈의 5-Star였다. 이를 바탕으로 선정된 2023년 글로벌 아티스트 차트에서는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뉴진스가 톱 10에 올랐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내수 시장과 해외 시장의 역전 현상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24년 KCTI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K팝의 해외 매출액은 1조 2,377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 하이브의 해외 매출 비중은 63.3%에 달했으며, JYP엔터테인먼트는 52.2%, YG엔터테인먼트는 48.6%였다. 루미네이트의 ‘Mapping Out K-Pop’s Global Dominance’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 미국, 인도네시아에 이어 K팝을 많이 소비하는 국가 4위다. 모국이지만 소비율은 1위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K팝의 인기가 왜 체감되지 않을까?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2010년대 중후반,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한국 대중음악 시장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탄소년단이 BBMA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하며 K팝의 미국 시장 진출 교두보를 확보하고, 본격적으로 영미권 음악 차트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한국 음악 시장 역시 K팝이 대중의 관심을 독점하던 시대였다. 블랙핑크, 트와이스, BTS, 세븐틴, EXO와 같은 거대 그룹들이 이끌던 시기이며,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비롯해 다양한 연습생 중심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K팝의 인기를 더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16년 이후 해외 성과가 높아질수록 한국 내 K팝 인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먼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할 수 있는 공식 차트의 부재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과거 멜론, 지니, 벅스, 플로 같은 토종 스트리밍 플랫폼의 실시간 차트는 대중음악 인기의 바로미터로 자리 잡았으며, K팝 팬덤의 조직적인 스트리밍 경쟁을 유발했다. 2018년~2019년 음원 사재기 사건은 팬덤의 화력을 넘어선 무명 발라드 가수들의 차트 점거 현상으로 이어졌고, 대중은 차트 순위를 신뢰하지 않게 됐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투표 조작 사건도 K팝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무너뜨렸다.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등으로 이어지던 프로젝트 그룹의 인기는 뜨거웠으나, 2019년 프로듀서 안준영과 CP 김용범이 투표 조작 혐의로 처벌받으며 프로그램과 K팝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K팝 전략은 ‘모두를 아우르는 음악’에서 ‘팬덤 중심의 음악’으로 변화했다. 차트 개편 이후 팬덤은 실물 앨범 구매에 집중하며 국내외 성적으로 그룹의 가치를 입증했다. 이로 인해 K팝 앨범 판매량은 10년간 10배 이상 증가했고, 2023년에는 1억 1,6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방탄소년단 이전까지 단 한 팀도 없었던 빌보드 200 차트 1위 그룹은 2019년부터 슈퍼엠, 스트레이키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뉴진스, 에이티즈, 트와이스 등으로 대거 증가했다.
레이블의 전략은 신규 팬덤 유입보다는 기존 팬덤의 결집과 강화를 주목적으로 삼고 있다. 음악 역시 새로운 시도보다는 그룹의 개성을 강화하고 해외 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트와이스, 블랙핑크 같은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그룹들은 미국과 일본에서 대규모 스타디움 투어를 성황리에 개최했고, 코로나19 이후 이러한 성장세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자체 프로듀싱 능력을 갖춘 보이그룹에서 두드러지며, 스트레이 키즈와 에이티즈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더불어 한국에서의 K팝 활동은 점점 ‘팬서비스’에 가까워지고 있다. KBS 뮤직뱅크, Mnet 엠카운트다운, SBS 인기가요, MBC 쇼 음악중심 등은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음악 프로그램으로, 최근 0%대의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신곡 홍보와 유튜브 라이브 클립 제작의 기회로 여겨져 여전히 중요하다. 한국에서의 낮은 화제성과 인지도는 K팝이 더 이상 ‘모두의 음악’이 아니라, 거대 팬덤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사업 모델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그렇다고 K팝이 완전히 한국에서 외면받는 것은 아니다. 에스파, 아이브, 지드래곤, 세븐틴, 프로미스나인, 뉴진스, (여자)아이들 등 여러 그룹은 국내 미디어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이들의 성적도 훌륭하다. 산업 전체로 보아도 오히려 해외 시장에서의 높은 인기로 인해 전체 매출은 꾸준히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K팝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 2023년 한국 써클차트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디지털 톱 400 차트에 오른 걸그룹 음원의 영어 가사 비중은 41.3%로, 2018년 대비 18.9% 증가했다. 보이그룹의 경우 영어 가사 비중은 24.3%로 나타났다. 해외 작곡가들의 참여는 필수가 되었으며, 5~6인 이상의 팀이 협업해 곡을 ‘조립’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싱글 및 앨범 단위의 컴백 후 짧은 한국 활동을 마치고 월드 투어에 나서는 것이 최근 K팝 그룹의 전형적인 활동 방식이다. 특히, ‘4대 기획사’ 소속 가수들은 미국의 인기 토크쇼에서 데뷔 무대를 가지는 경우도 흔하다. 이처럼 K팝을 제작하는 기획사들의 전략은 해외 시장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K팝은 자국보다 해외에서 더 큰 인기를 누리는 상황이다. 과연 K팝은 라틴 뮤직이 그랬던 것처럼, 같은 문화권내의 지속가능한 서포트와 신뢰, 다른 문화권의 확고한 팬덤과 이해를 통한 ‘모두의 음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by 김도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