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우리는 돌파해 나가는 중이다”, 빌보드 위민 인 뮤직 2025

2025.03.31

“I want to take this moment to raise my voice for the women whose voices are not always given a stage, for the women who leave behind everything they know crossing borders. 저는 무대에서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여성들, 그들이 아는 모든 것들(즉, 살아온 방식이나 삶)을 모두 남겨둔 채 국경을 넘은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싶습니다.” 2025년 빌보드 위민 인 뮤직(Billboard’s Women In Music‧이하 WIM) 시상식에서 브레이크스루 상(Breakthrough Award)을 받은 안젤라 아길라르(Ángela Aguilar)가 한 말이다. 안젤라 아길라르는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이번 발언을 통해 자신이 어떤 근본을 지니고 있는지, 동시에 이민자와 관련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명확하게 밝힌 셈이 되었다. 이는 WIM 시상식이 존재하는 이유와 시상식의 주체가 되는 여성들의 아이덴티티와 발언 하나하나가 큰 무게를 갖는 순간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래서 해를 거듭할수록 WIM은 그 의미를 더해간다. 2007년부터 매해 빌보드가 개최해오고 있는 이 특별한 시상식은 한 해 동안 음악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친 최고의 여성 아티스트‧창작진(크리에이터)‧프로듀서‧경영진 등을 선정한 리스트를 공개하고 시상한다. 2007년에 처음 올해의 여성(Woman of the Year) 상을 받은 아티스트는 미국의 컨트리 가수이자 배우인 레바 매킨타이어(Reba Nell McEntire)였다. 이후 비욘세(Beyoncé),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케이티 페리(Katy Perry), 레이디 가가(Lady Gaga), 마돈나(Madonna),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등 음악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친 여성 아티스트들이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점점 더 다양한 여성들의 이름을 리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025년 올해의 여성상 수상자는 2023년 시상식에서 라이징 스타상을 받은 래퍼 도이치(Doechii)다. 도이치는 제67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세 번째 믹스테이프 <Alligator Bites Never Heal>로 베스트 랩 앨범 상을 수상했다. 1998년생으로 아직 26세인 도이치가 올해의 여성상을 받으면서, 현재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젊은 음악가 여성 중 한 명인 그의 영향력은 한층 강력해졌다. 그는 틱톡(TikTok)이나 SNS와 같은 다채로운 뉴미디어 매체를 통해 스스로의 영향력을 강화할 줄 아는 영리함을 지녔고, 자신만의 독특하고 때때로 실험적이기까지 한 음악색을 자랑하는 음악가로서 음악 산업에 신선함을 선사한다. 하루하루 빠르게, 자신만의 개성을 앞세워 성장해나가는 도이치의 모습은 다이내믹한 변화 속에서도 스스로의 매력을 갈고 닦으며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또래 여성들의 성장을 대변하고 있기에 더욱 의미 있다.

한편 도이치 이외에도 브레이크스루 상에 안젤라 아길라르, 아이콘 상(Icon Award) 에리카 바두(Erykah Badu), 파워하우스 상(Powerhouse Award) 글로릴라(GloRilla), 올해의 작곡가 상(Songwriter of the Year) 그레이시 에이브람스(Gracie Abrams), 룰브레이커 상(Rulebreaker Award) 메건 모로니(Megan Moroney), 히트메이커 상(Hitmaker Award) 메간 트레이너(Meghan Trainor), 라이징 스타 상(Rising Star Award Presented by Honda Stage) 무니 롱(Muni Long), 임팩트 상(Impact Award) 타일라(Tyla) 등이 WIM에서 수상했다. 이 리스트는 갓 스물을 넘긴 젊은 아티스트부터 연륜이 넘치는 중년의 아티스트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세대, 다양한 음악적 지향 등을 고루 조명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수상자가 한 명 추가됐다. 바로 올해의 어머니 상(Mother of the Year Award)을 받은 티나 놀스(Tina Knowles)다. 티나 놀스는 가수 비욘세와 솔란지(Solange)의 어머니로, 2025년 WIM에서 새롭게 마련한 부문의 첫 수상자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노력은 자식을 위한 당연한 희생으로 여겨지고, 이에 어머니의 공을 드러내 치하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WIM은 이런 현실에 직설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며 오로지 ‘여성’의 역할에만 집중한 시상식의 지향점을 명쾌하게 조명한다.

한국의 여성 아티스트들과 실무진들도 2025 WIM에서 주목받았다. 한국 아티스트 중 에스파(aespa)와 제니(JENNIE)가 각각 올해의 그룹상(Group of the Year), 글로벌 포스상(Global Force Award)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이는 2023년에 트와이스가 브레이크스루 상을 받고, 바로 지난해에 뉴진스가 올해의 그룹상을 받은 데 이어 또다시 거둔 눈에 띄는 성취다. 에스파와 제니는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를 비롯, 아티스트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각종 음원 스트리밍 차트 및 앨범 판매량 차트, SNS 등에서 훌륭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특히 2년 연속 올해의 그룹상을 한국의 아티스트가 거머쥐었다는 사실은 이제 K팝 그룹의 앨범 발매 스케줄, 투어 스케줄 하나하나가 아시아를 넘어서서 글로벌 음악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는 결코 에스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제니가 속한 블랙핑크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나아가 지금 빌보드 메인 차트에 이름을 올려본 적 있거나 앞으로 올릴 예정인 여러 한국의 걸그룹 및 보이그룹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WIM 레이블즈 앤 디스트리뷰터스(Labels & Distributors) 파트에서는 SM엔터테인먼트 김지원 CRO, 최정민 CGO와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최현주 부사장 겸 총괄 프로듀서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SM 3.0 전략을 공표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라이즈(RIIZE), NCT 위시(NCT WISH), 하츠투하츠(Hearts2Hearts) 등을 비롯해 기존에 데뷔한 그룹들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재, SM엔터테인먼트에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여성 임원 김지원 CRO와 최정민 CGO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졌다. 아이브(IVE)의 성공을 이끌고 최근 걸그룹 키키(KiiiKiii)를 데뷔시킨 서현주 부사장 겸 총괄 프로듀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음악 산업에서 여전히 남성들이 대부분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 뚜렷한 성과를 내며 활약 중인 한국의 여성 고위직 임원들은 자신이 속한 회사의 가치를 올리고, 음악 산업에서 스스로가 지닌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장 중이다. K팝 아티스트들이 지닌 강력한 권력을 만들어내는 실무진들의 역할이 갈수록 더 중요해지는 현재, 이들을 조명하는 일이야말로 K팝 산업의 동력을 가장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25년 빌보드 WIM 리스트를 통해, 그리고 시상식 현장을 통해 다양한 레이블과 미디어에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여성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앞으로도 한국의 아티스트들과 제작자들을 매해 이 리스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 K팝이 여전히 탄탄한 기반 위에서 성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중이며, 그 기반을 닦기 위해 애쓴 많은 여성의 노고가 뒤늦게라도 인정받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을 넘어서서, 우리가 가장 새겨야 할 문장은 바로 여기에 있다. “We are not breaking down, we are breaking through. (우리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돌파해 나가는 중입니다.)” 안젤라 아길레르의 헌사는 사실상 지금 이 시간에도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거나, 처절하게 국경을 넘는 등 각자의 자리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전세계 여성들에게 지극히 유효한 메시지다. 비단 음악 산업뿐만 아니라.

글 / 박희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