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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의 K-바이닐 시장
OCTOBER 09, 2021 김영혁
​순서대로 빛과 소금, 장필순, 아이유, 백예린 LP

백예린의 [Every Letter I Sent You] 바이닐이 2천 장 한정으로 발매된다는 소식이 들린 것은 2020년 5월. 그러니까 한국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났을 무렵의 일이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음반점에도 이 음반이 도착했는데 주문한 수량의 1/10도 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레코드 판매가 시작된 날, 웹사이트의 메인 페이지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동시 접속자 수가 약 7천 명에 달했으니 사이트에 접속하기가 원활할 리 없었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판매가보다 3배 이상의 가격이 매겨진 매물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팬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자 기획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진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추가로 레코드를 제작해 예약을 받을 것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이렇게 빠르게 두 번째 프레싱을 준비하는 것도, 선주문을 받아서 제작을 하는 사례도 한국의 바이닐 시장에서는 거의 처음이었다. 예약은 1주일가량 진행되었는데, 제작사를 통해 확인된 예약 수량은 약 1만 3천 장. 같은 앨범의 시디 버전이 발매 첫 주에 4천여 장이 팔린 걸 감안한다면 놀랄 만한 숫자였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공연장이나 클럽에서 음악을 듣고 즐기던 팬들은 갑자기 갈 곳을 잃어버렸다. 대중음악 공연장이 ‘매우 위험한 장소’로 분류되면서 거의 모든 공연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기 가수의 공연 티켓처럼 순식간에 매진되는 무언가가 나타났고, 음악 팬들은 자연스럽게 그 번개처럼 사라지는 물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인기 가수의 티켓을 여러 장 산 다음 프리미엄을 붙여 팔던 어떤 사람들은 바이닐 레코드라는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을지 모른다.

이 모든 일이 코로나19 이후에 급작스레 벌어진 것은 아니다. 2019년 11월, 아홉 번째 ‘서울레코드페어’가 열렸을 때 개최지(문화역서울284)에 준비된 ‘서울레코드페어 한정 음반’들은 판매를 시작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전량 매진되었다. 서울에서 이 이벤트를 연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울레코드페어는 2011년 11월 처음 시작되었다. 서울에도 레코드 관련 이벤트가 열리면 음악계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업계 사람들을 만났는데, 음반을 판매하는 매장 관계자들이나 음반을 다루는 레이블 관계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었다. 이를테면 ‘음반을 사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데 그런 이벤트를 한다고 사람들이 찾아오겠어?’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어렵게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 시작한 첫 서울레코드페어를 찾아온 관객은 약 2천 명. 그렇게 매년 어렵사리 진행된 이 연간 이벤트는 7주년이 되던 해 2만 명의 관객이 찾아오는 이벤트가 되었다. 첫해보다 10배가 많은 숫자였다. 2017년과 2018년 사이의 성장 폭이 특히 컸는데(2배가량 성장), 한국에서 바이닐 레코드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점화된 불꽃은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음악을 즐겨야 하는 2020년의 상황과 맞물려 활활 타올랐고, 백예린이 내놓은 레코드 한 장은 엄청난 촉매제가 되었다. 1주일 만에 1만 장이 넘게 팔렸다는 얘기가 업계에 퍼지자 그간 바이닐 레코드의 수요를 과소 평가해 온 기획사와 음반사, 유통 관계자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국내에서 판매되는 바이닐 가짓수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양준일이 TV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되고 빛과 소금, 장필순, 김현철 등의 음악가가 ‘한국형 시티팝’의 주역으로 얘기되면서 1980년대~90년대에 발매됐던 음반들이 바이닐로 재발매되는 사례도 급증했다. 판권을 얻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고, 이전에 바이닐을 제작한 적이 없는 신생 업체들마저 시장에 진입하면서 라이선싱 권리를 얻기 위한 인접권료는 크게 오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바이닐 판매가격에도 반영되기 시작했다. 3만 원대에 판매되던 1LP(1장이 들어 있는 엘피)들은 약속이나 한 듯 4만 원을 넘기기 시작했고, 2020년 하반기에는 2LP에 10만 원이 넘는 소비자 가격이 책정된 바이닐도 나타났다. 2020년 9월, 이소라의 [눈썹달] 2LP는 13만 원대에 판매되었다. 천으로 만든 재킷 위에 큐빅과 실로 수작업을 통해 달과 별을 꾸몄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이었다.

1만 장 단위로 판매되는 바이닐이 나오고, 아도이나 공중도둑처럼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독립적 유통 방식만으로도 시디보다 더 많은 숫자의 바이닐을 판매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당수 음악가나 기획사는 바이닐을 공연의 VIP 티켓이나 디너쇼 티켓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유의 [꽃갈피] 바이닐은 팬데믹 시국에 접어들면서 100만원 이상의 가격표가 붙은 중고 매물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런 상황이 되어도 해당 음반사는 재발매를 할 계획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공식적인 코멘트는 없었지만 ‘이미 높은 가격을 주고 이 음반을 구매한 팬들이 실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재발매를 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알려져 있다. 2020년에 발매되어 곧장 매진된 듀스의 [Deux Forever]의 추가 제작 여부를 문의했을 때 관계자에게 들었던 답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추가 제작을 하더라도 결국 이런 식으로 앨범을 ‘되파는’ 사람들은 계속 있을 것이고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는 의견이었다.

바이닐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열광하는 팬들이 크게 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음악가와 기획사는 이 매체의 수요나 지속성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다.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혹은 현재까지 일상적으로 제작되고 있는 시디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레코드 관련 기기(레코드 플레이어 등)의 판매도 급증했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은 레코드를 ‘듣는 매체’가 아니라 ‘보고 간직하는 매체’로 인식하고 있다.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는데, 여전히 시디를 구매하는 10~20대 중 상당수가 CD 플레이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2021년 음반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이 물리적 음반들은 그 기능이나 존재 이유가 20세기의 음반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닐이 일부(재생 기기를 갖고 있는) 한정된 팬들만 사는 매체라는 인식을 가지지 않아도 될 것이며, 한정된 수량만을 제작했을 때 결국 상승하는 것은 팬들의 불만과 ‘리셀러’들의 수익이 될 것이다. 아이유의 [꽃갈피]를 많은 돈을 주고 구매한 소수의 팬들과 이 레코드를 갖고 싶어 하는 훨씬 많은 숫자의 팬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한다.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오리지널 프레싱’과 다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프레싱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오리지널과 다른 커버나 내용물로 재발매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오리지널은 오리지널로서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인정받을 것이고, 수많은 팬들은 정상 가격에 새로 나온 레코드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음악가나 기획사는 이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고민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가수 김동률은 본인이 발매한 엘피 레코드가 리셀러들에 의해 가격이 올라가는 상황이 되자 수많은 팬들이 ‘정가에 앨범을 구입할 수 있도록’ 선주문 후제작 방식을 택한 다음 엘피를 재발매했다. 바이닐 판매 수량을 구체적으로 집계하는 곳이 없어 정확히 얼마나 시장이 커졌는지 수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바이닐 시장이 지난 2년간 큰 폭으로 커지고 넓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에 따라 시장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도 좀 더 넓은 곳을, 좀 더 먼 곳을 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정 수량 제작과 고가의 가격 정책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대중음악계 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이 새로운 시장마저 잦아들게 하거나 사라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빌보드 코리아 매거진 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in Billboard Korea Magazine Vol.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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