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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수의 음악캠프 30년
JULY 30, 2020 임진모

 

 

 (사진=배철수의 음악캠프) 

1960년대 말 아직 초등학생이던 어릴 적, 밤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라디오 프로그램 <전설 따라 삼천리>에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라디오가 전성기였던 그 시절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꽤 오랫동안 들은 것 같아서 과연 얼마 동안 방송했을까 알아봤더니 겨우(?) 15년간이었다. 

 

한참 뒤에 나왔지만 ‘서구 대중음악’ 팝을 들려주는 MBC FM 라디오 프로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올해 장장 그 배인 30년을 넘겼으니 참으로 롱런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진행자가 1990년 방송 시작 이래 한 번도 바뀌지 않고, 같은 타이틀의 프로그램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친 김에 40년까지 가자고(디스크자키는 손사래를 치지만) 외치는 팬도 많다. ‘기록의 라디오 프로’인 것만은 분명하다. 

 

놀라운 것은 1990년대 후반 들어 현저하게 소비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팝송을 가지고 ‘한 프로 최장수 진행자 기록’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1950~60년대생 베이비붐 세대는 서구 동경의 분위기 속에서 팝송에 열광했지만 이후 세대는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된 우리 대중가요를 편애한다. 

 

팝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하락하면서 당연히 프로그램 청취율도 영향을 받았고, 한때 MBC 라디오국 내부에서 폐지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라디오 프로듀서들 간에 ‘이런 음악 프로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주장이 통하면서 극심한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았다. 이제는 라디오 프로의 레전드로 격상했고 많은 MBC 라디오 PD가 ‘음악 감수성 유지’ 차원에서라도 한번은 연출해 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한다. 

 

솔직히 음악은 요즘 인기 측면에서 흡수력이 떨어지는 소재다. 그것도 더 안 듣는 서구 팝에다 격변 시대가 요구하는 재미와 자극이 없는 프로가 어찌 30년의 긴 세월을 관통할 수 있었을까. 트렌드니 뭐니 할 게 없다. 진행자의 캐릭터와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도 꼭 장점은 아니다. 뭔가 다른 것을 구성하고자 하는 본능의 PD들 입장에선 별 도모할 게 없다는 점에서 자존감이 낮아질 수도 있다.   

 

 

 배철수에게 음악은 사랑인 동시에 신념이다.

이 불리(不利)를 불리로 작용하지 않게 만들며 예외를 창출한 요인은 무엇일까. 결론이 조금 재미없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 시각으로는 ‘배철수와 음악’이란 앙상블이다. 디스크자키 배철수에게 음악은 사랑인 동시에 신념이다. 믿을 것은 음악밖에 없다는 사고는 30년 동안 조금도 이탈하지 않았다. 


곁에서 지켜본 배철수의 음악 사랑은 실로 어마무시하다. 지금도 방송 중 스튜디오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들을 정도니까. 고개를 흔들며 음악에 잠기는 장면은 보기 좋은 합(合)이다. 실연(實演)자 때의 음악 DNA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걸까. 믿지 않을지 몰라도 음악 프로를 진행하는 사람이 음악에 대한 애정이 빈약한 경우가 어처구니없게도 드물지 않다. 


바로 이것, 배철수의 음악을 향한 꾸준한 헌신과 믿음이 팬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간 것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오래 들은 청취자들은 진행자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는지를 안다. 들은 사람만이 안다. 음악을 두고 진행자와 청취자 간 연대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게 개입하지 않았다면 과연 프로가 장수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 프로에 24년간 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가장 프로그램의 덕을 본 게스트가 본인이 아닐까 한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어떤 소개 자리든 사람들은 내 신상을 <배철수의 음악캠프> 출연자로 직결한다. 


“배철수 씨 라디오 잘 듣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듣기 시작했는데 제가 벌써 40대가 됐네요.” 


“둘이 왜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겁니까? 실제로 사이가 안 좋은가요?” 


“요즘 두 사람이 너무 호의적인데 그러니까 재미없어요. 좀 싸워주세요!!” (살다 살다 싸우라고 부추기는 말을 듣는 것은 이 프로밖에 없다) 


내 정체의 1순위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이다 보니 나에 대한 인식과 이해(때로는 오해)가 전적으로 이 프로에서 비롯한다. 30년 가까이 인터뷰와 해설을 위시해 꽤나 텔레비전 활동을 해왔지만 사람들은 나를 여전히 TV보다 ‘라디오 인물’로 결부 짓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라디오와 음악을 동격으로 여겨왔던 터라 이런 상황을 맞으면 내심 흐뭇하다. 그럴 때마다 “그래, 음악에 충성해야지..” 하며 다시금 결기를 고른다. 


방송하면서 진행자에게 고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끔 배철수와 음악적 대화를 나누다 보면 너무도 빤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말하자면 엘튼 존, 빌리 조엘 같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진행자라면 내가 곤궁에 빠졌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눈치챈다. 가끔 이런 경우에 딴 프로 MC들 중 더러는 실소하며 “임 선생님! 까먹으셨구나”라고 하는데 배철수는 그런 어법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는 분명 내가 뭔가 기억나지 않아 헤매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상황에서 매끈하게 다른 이야기로 돌려버린다. “그런데 말이죠. 이런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위기 탈출의 사례(그리고 일대 감사의 순간)가 족히 서너 번은 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훌륭한 진행자임에 감탄하고 감탄한다. 이건 개인적인 감탄이고 정말로 공적으로 그에게 찬사를 보내야 할 대목이 있다. 1990년대까지 음악청중은 가장 최근의 음악을 찾았다면 음악의 기운이 떨어져서일까, 2000년대 이후의 청중들은 신곡을 듣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거나 꺼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음악 라디오프로는 팝을 틀 경우 모조리 흘러간 곡들을 선곡한다. 옛것이 새것을 추월하면서 더욱더 사람들은 과거시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30주년 기념방송. 지난 2월 17일부터 21일까지, 영국 bbc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사진=배철수의 음악캠프) 

 

 그는 지금도 토요일마다 게스트 전주현과 함께 빌보드 차트 20위까지의 신곡을 소개한다. 

그는 넘치는 과거 속에 현재에게 광채를 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발전은 없다는 걸 철학화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전제해 매체들은 갈수록 익숙함을 선호하는 대중의 정서에 바짝 기댄다. 여기서 배철수의 신념이 빛을 발한다. 다들 7080 음악 혹은 8090 정서로 안정을 지향할 때 그는 막 나온 따끈한 신곡에도 문을 연다. 따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때로 거스르는 것, 즉 카운터counter가 음악의 본령임을 실천하는 것이다. 

음악 인구가 막 나온 팝송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데도 그는 지금도 토요일마다 게스트 전주현과 함께 빌보드 차트 20위까지의 신곡을 소개한다. “나라도, 나만이라도 해야 한다!”는 사실상의 고집이다. 그는 진(進)행하지, 퇴(退)행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옛 노래를’ 싫어하거나 방송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옛 노래만’ 내보내는 것이 싫다는 얘기다. 그는 넘치는 과거 속에 현재에게 광채를 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발전은 없다는 걸 철학화하고 있다. 불균형과 쏠림의 범람 속에서 기울어진 것을 ‘조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게 과연 ‘활주로’와 ‘송골매’로 뛰던 젊은 시절의 록 토양에서 배양된 반항의 록 스피릿인지 모르지만 그는 시대적 강제와 압박을 거부한다. 갑자기 1960년대 록 밴드 도어스의 데뷔곡 ‘Break on through to the other side’가 생각난다. 주류, 대세, 관행, 무기력, 부조리와는 금을 긋고 딴 쪽으로 헤쳐 나가기!! 


확실히 그는 ‘까칠한’ 사람이다. 외부 관계자들이 그를 섭외하지 못해서 우회적으로 더러 내게 부탁하는 것은 그가 웬만해서는 잘 응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 부탁을 단호히 거절한 적도 많다. 현재 연출자인 남태정 프로듀서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30년 이력의 비결을 ‘초지일관’으로 정리한다. 


“배철수 진행자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스타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나머지는 다 변했죠. 음악도 달라졌고 라디오 환경도 변했고… 하지만 배철수는 똑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죠. 그러면서 가장 독창적인 프로가 된 거죠. 그는 한결같음을 독창성으로 만들었습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30년은 음악이 주는 위안의 손길이다. 우리의 지친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은 언제든지 있고 앞으로도 넘친다는 것을 프로는 일깨운다. 음악 관계자들 사이의 암묵적 합의. “음악이 전부가 아닌 이 시대. 음악을 위해서라도 배철수 35년, 40년, 45년, 50년을 희망하자. 역사를 만들자!” 


▶WATCH - 28AV - 배캠 30주년 프로젝트 DAY1 ✨ 앤-마리 Anne-Marie (Live at the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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