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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BOAR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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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뽕짝 같은 삶 <기생충>
MARCH 06, 2020 Billboard Korea
(사진=포토그래퍼 이정규)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계에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주목을 받은 건 감독과 배우뿐만이 아니다. 한국어를 아주 매끄럽게 영어 자막으로 옮긴 달시 파켓(Darcy Paquet), 유려한 통역을 보여준 샤론 최(Sharon Choi)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이 밖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정을 쏟은 많은 이들이 기생충의 세계적인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음악감독 정재일 역시 숨은 공로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이며 천재 소년으로 불렸다. 지금은 팝 음악부터 연극, 영화, 뮤지컬, 그리고 국악까지 폭 넓은 장르를 아우르며 실력파 뮤지션겸 프로듀서로 정평이 나 있다. 빌보드 코리아는 정재일 감독을 만나 어떻게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고,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지 등 음악감독으로서 기생충 작업에 대해 물었다.

 

영화 <기생충>의 음악작업 제안은 어떻게 받게 되었나요?

봉준호 감독과는 영화 <해무>로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영화 <옥자>의 음악감독으로 첫 작업을 함께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시나리오를 탈고했다며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 이 영화도 함께하자고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되었고, 그것이 <기생충>이었어요.

 

<기생충>의 테마 곡을 완성하기 위해 봉준호 감독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그와 관련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영화 <옥자>는 로드무비 형식으로 챕터별로 드라마틱한 음악이 필요했다면, 영화 <기생충>상황에 몰입할 수 있으면서 한 가지 톤으로 길게 이어질 수 있는 구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에 필요한 악기 구성에도 같은 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고민했고요.

 

테마 곡 대부분이 바로크풍의 음악이 많이 연상돼요. <기생충>의 방향성과 어떤 부분이 맞았다고 생각하나요?

한 가지에 대해서 서로 고민하며 나눈 이야기 중, 바로크 음악과 현악기를 예로 들었어요. 실제로 헨델의아리아중 하나를 선곡해 놓은 상태였고, 그 곡을 다각도로 연구하면서 <기생충>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캐릭터와 신념을 종교적이고 우아하면서뽕짝의 멜로디를 연상시키는 그 지점을 생각했어요.

멜로디의 호흡이 기묘한 분위기에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아요. 어떤 상상을 하며 작업했나요?

<기생충>의 편집본을 보며, 제게 전하는 이야기와 그 생각에 집중하다 보니 이런 선율을 구성하게 되었어요. 계급 사회를 떠올리며 계단 형식을 착안하기도 했고요. 영화 전체를 두고 볼 때 크게 의식한 부분은 아니었지만, 작업하고 보니 아주 많은 선율이 상승과 하강의 형태를 띠게 되었죠.

 

개인적으로 <기생충>의 장면과 곡 중 가장 긴장감(명장면)이 높은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백수로 살 길이 막막하지만, 성격은 좋은 기택(송강호)이 글로벌 IT기업 CEO인 동익(이선균)을 만나면서냄새에 의해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는 첫 순간부터 마지막의 절정으로 치닫기까지, 그 절망과 살의를 켜켜이 쌓아나가는 것이 가장 긴장감이 높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은 마치 삶과 음악이 극적으로 맞닿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사진=영화 '기생충')

 

 

<기생충>은 우리 주변의 삶이 될 법한 이야기를 음악의 효과로 한층 더 극적으로 끌어올렸어요. 삶 혹은 음악적으로 극적인 순간이 있었다면?

10대 중반의 어느 날, 야외 공연의 리허설을 마치고 잠깐 풀밭에 누워 음악을 들었어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며 오페라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을 듣던 중 눈물을 흘렸죠. 그저 아름다웠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상황과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었어요. 그날 이후로 항상 그 순간을 재현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원초적인 질문일 수 있어요. 음악은 본인에게 어떠한 의미인가요?

다양한 의미로 대답할 수 있으나, 원초적인 질문이니 원초적으로 대답할게요. (웃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통해 나의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또한 에너지를 얻는 고마운 존재예요.

 

긍정적인 측면의음악적 결핍을 해결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결핍보단 혜택을 보는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다만 가끔 삶이 힘에 부칠 때나 휴식이 필요할 때, 조용히 눈을 감고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떠올려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특히 영화음악이 주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낯가림이 무척 심한 사람이에요. 연극이나 뮤지컬같이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는 부담이 되곤 해요. (웃음) 가끔은 너무 어색해서 계속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 시늉을 하기도 해요. 영화는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이를 영화에 잘 녹이면 되는 작업이죠. 혼자만의 세계에 온전히 집중해 작업할 수 있어서 선호하는 편입니다.

 

작업이나 공연 일정이 없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본인만의 특별한 취미나 취향 같은 것이 있다면?

예술 장르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용이예요. 현대무용을 매우 사랑해요. 틈만 나면 유럽에 가서 많은 공연을 보고 올 정도죠. 그중 성지순례처럼 일 년에 두세 번씩 꼭 독일의 부퍼탈이라는 도시에 가서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보고 와요. 항상 뒤셀도르프 공항에 내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그 길은너에게 가는 길이라는 노래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길이예요.

 

앞으로 음악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술에 함몰되어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언제나 그랬듯, 음악이 필요한 곳에 제가 있고 싶어요. 다양한 시도도 해볼 생각이고요. 올가을에는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극의 음악감독을 할 예정입니다.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요.

 

이 기사는 Billboard Korea Magazine Vol.1에 게재되었습니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in Billboard Korea Magazine Vol.1.


해당 기사는 빌보드 US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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